김승희 시인이 전하는 '빵점 같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
74세 원로 시인이 5년 만에 선보인 새 시집에서 허무와 자유의 변증법적 관계를 탐구하며, 소외된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보적 시각을 제시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자유롭다. 아무것도 없으니 자유롭다. 공허해서 울고 싶은데, 빵점이기 때문에 자유롭다... 삶의 아이러니입니다. 그 힘으로 시를 씁니다."
김승희(74) 서강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5년 만에 펴낸 새 시집 '빵점 같은 힘찬 자유'(창비)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다. 허망과 자유의 뫼비우스 띠 같은 아이러니를 탐구하는 이번 작품은 현대 사회의 모순을 꿰뚫는 예리한 통찰을 담고 있다.
바니타스에서 발견한 진정한 자유
시집의 제목부터가 강렬한 모순이다. '빵점'과 '힘찬 자유'라는 상반된 개념의 조합은 당돌하고 거침없는 비유로 "돌발성의 황홀"을 불러일으킨다.
"이상하게 이번 시집에서 '빵점'이란 단어에 빠졌어요. 아무것도 없다, 제로다, 공허하다, 허망하다, 헛되다." 김 시인은 성경 전도서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바니타스'(Vanitas) 개념을 설명했다.
"바니타스, 허망하다/ 허망한 것이 허망할 때, 그래서 마음껏 다 허망할 때 비약적으로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허망한 것이 충분해질 때 자유를 알게 된다고 한다"
시인에게 자유란 "속박을 벗어나서 나아가는 것"이며 "소나기로부터의 자유는 무수한 소나기 속으로 그저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작위적 공허가 아닌 고요한 마음으로 저절로 소멸하는 것에 가깝다.
소외된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
김승희 시인의 새 작품은 부조리한 현실 속 소외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역사 속에서 잊힌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증언하고 애도를 표하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분홍색 십자가 아래 이름 없는 주소 아래'는 뉴욕에서 연쇄살인범에게 목숨을 잃은 한인 예술가 차학경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차학경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열한 살에 미국으로 이민, 서른한 살의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차학경은 불멸의 예술가라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우연히 살해당한 여자, 버려진 여자, 유기당한 여자, 실종된 여자 등의 대명사로 남았다"며 "그것이 여성이 저항할 수 없는 약자의 운명이라는 것을 비극적으로 고통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시인은 설명했다.
메멘토 모리, 창작의 원동력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김승희 시인은 50년 넘는 문학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시를 쓸 수 있는 동력에 대해 그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힘"이라고 답했다.
"죽음의 불가피함과 삶의 유한함, 그것이 창작의 동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오은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인은 나이 들어도 시는 나이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고 선배 시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김승희 시인은 시적 젊음의 비결로 좋은 독서, 신선한 언어 탐구, 시간에 대한 예리한 관찰, 그리고 몰두를 꼽았다. "꿈을 향해 나가려면 어느 정도는 미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그런데, 그 '어느 정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너무 미쳐도 안 되고 너무 안 미쳐도 안 되고"라며 웃음을 지었다.
김승희 시인의 새 시집은 허무와 자유,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소외된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그의 시각은 우리 사회의 진보적 가치와 인권 의식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