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꾼 노동 시장, 기술 현장으로 뛰어든 여성들과 차별 없는 내일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은 노동 시장의 지형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사무직과 서비스직에서 일자리 불안이 커지면서, 손으로 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현장으로 향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기술이 AI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하며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고 있다. 타일 시공, 필름 작업, 철거, 도배 등 기술직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소셜 미디어에서 호응을 얻으며 확산 중이다.
AI 위협 넘어, 손으로 만드는 미래
주택 인테리어 필름 작업을 하는 김효진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노가다요정'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작업 일상을 공유한다. 그는 원래 광고디자인학과 유학을 준비하다가 코로나19로 계획이 무산된 뒤 디자인 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챗GPT가 손쉽게 '지브리풍'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그림도 금세 대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원래 가려던 길에서 방향을 틀고 기술직을 선택했다.
욕실 리모델링 업체에서 타일 조공으로 일하는 A 씨 역시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예체능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생성형 AI가 발달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지 고민했다. 결국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현장으로 향했다. 지금은 철거와 방수, 타일 시공 등을 배우며 현장 보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개인의 불안을 넘어 청년 여성이 놓인 취약한 구조를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중심 직종의 생성형 AI 노출 가능성은 29%로 남성 중심 직종(16%)보다 높았다. 자동화 위험이 큰 직군 비율 역시 여성 중심 직종이 남성 중심 직종의 다섯 배 이상이었다.
기술직 현장 역시 마냥 쉽지만은 않다. 여자가 여기 와서 뭐 하려고 하냐는 반응이나 여성 화장실이 거의 없는 열악한 환경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기술직 여성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에서 보람을 느낀다. 4년째 도배 일을 하는 이연재 씨는 텅 빈 공간이 제 손을 거쳐 화사하게 변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눈에 보이고, 연차가 쌓일수록 실력이 곧 경쟁력이 된다는 점이 좋다는 설명이다. 입주 및 퇴거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김현지 씨 역시 단순 노동처럼 보이지만 현장마다 다른 약품과 장비를 써야 하는 전문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씩씩한 여성들의 도전이 늘어나는 만큼, 제반 여건의 개선도 시급하다.
조롱에서 혐오까지, 차별금지법이 답이다
기술 현장의 젠더 편견과 노동의 구조적 문제는 온라인 혐오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스타벅스의 사회적 이미지 변화가 그 예다. 과거 비싼 커피를 마신다며 된장녀로 조롱당하던 곳이, 이제는 극우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탱크데이 마케팅 사태의 무대가 됐다.
완전히 반대로 보이는 두 사건은 사실 같은 맥락에 있다. 특정 집단을 조롱하는 놀이문화가 공통점이다. 20년 전 젊은 여성들이 된장녀라고 싸잡아 조롱당했다면 지금은 여기에 광주와 5·18, 세월호와 노무현 등이 더해졌을 뿐이다.
남지원 젠더데스크의 지적처럼, 특정 집단을 조롱하는 놀이문화는 대부분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 만연하게 퍼져 있다. 일베를 폐쇄하거나 처벌로 방향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밈화되고 암호화된 혐오 표현을 다 잡아내기 어렵고, 혐오의 범위를 세부적으로 설정하는 문제도 남기 때문이다. 혐오를 정의하지 않고 혐오가 문제라고만 하면 서로 사랑하면 해결된다는 식의 나이브하고도 틀린 결론에 가닫는다.
이에 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어진다. 혐오 표현을 직접 규제하지는 못해도 차별을 규제함으로써 혐오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내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 현수막을 내건 후보의 행보 역시 차별적 표현을 규제하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제재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방패 없이 상처받는 피해자를 줄이려면, 각자의 자리에서 혐오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유리천장을 깬 여성 정치의 새 역사
사회 전반의 구조적 차별을 넘어서는 움직임이 정치권에서도 나타났다. 6·3 지방선거에서 헌정 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했다.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인이다. 1995년 민선 지방선거가 도입된 지 30여 년 만에 거둔 유의미한 성과다.
추 당선인은 판사 출신으로 김대중 전 총재의 인재영입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서울 지역구 최초 여성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최다선 여성 의원 기록을 세웠고, 민주당 당대표와 법무부 장관도 지냈다. 인구가 가장 많은 광역단체를 이끌게 된 그는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할 발판도 마련했다.
정치 성향을 떠나 여성 광역단체장이 배출된 것은 여성 정치사의 중요한 이정표다. 그러나 유리천장은 여전히 두껍다. 이번 시도지사 여성 후보는 7.8%에 그쳐, 4년 전 18.5%에서 10.7%p나 급감했다. 동시대 그리고 후세대 여성에게 영감을 주는 정치인이 더 많이 활동할 수 있도록, 정치적 대표성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잊힌 감각을 깨우다, 여성 예술의 공간
구조의 벽을 부수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예술에서도 이어진다. 리움미술관의 전시 <다른 공간 안으로 :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스마트폰에 빼앗긴 감각을 되찾고, 제도 미술 밖에 있었던 여성 작가들의 환경 예술을 재조명한다.
여성 작가들은 남성 중심의 미술에서 배제되었던 주제를 낯선 형식으로 풀어냈다. 여성의 몸과 경험, 욕망, 금기 등을 직접 활용해 관람객이 작품 내부 공간으로 들어가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리지아 클라크의 <집은 곧 몸>은 수정과 탄생의 과정을, 타니아 무로의 <한때 우리는 알았다>는 섭씨 45도의 공간 속에서 금기를 마주하게 한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오랜만에 온 감각에 집중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