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삼킨 대만, 한국의 미래에 던지는 질문
대만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심장부로, TSMC를 중심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불평등과 환경 파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하는 지금, 대만의 사례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요?
신주과학단지, 대만 반도체의 심장
대만 북서부의 작은 도시 신주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본떠 만든 신주과학단지에는 TSMC 본사와 미디어텍 등 설계·제작·후공정 업체들이 반경 3~5㎞ 안에 밀집해 있습니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직접 확인한 결과, TSMC에서 후공정 업체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분이었습니다. 이처럼 높은 밀집도는 반도체 분업 공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핵심 요소로 꼽힙니다.
반도체가 만든 '빛': 높은 소득과 꿈의 직장
신주과학단지의 노동자들은 대만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자랑합니다. 2025년 신주 가구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160만4000대만달러(한화 약 7000만원)로 대만 전역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주거 지역에는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고, 거리에는 고가 외제차가 흔합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신주과학단지 취업은 꿈의 직장으로 통합니다. TSMC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대학생 인카이쉬는 “대만에서 가장 큰 기업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만족한다”며 “졸업한 뒤에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반도체가 드리운 '그림자': 불평등과 양극화
하지만 반도체 독주의 그림자는 만만치 않습니다. 대만 국립중앙대 우다런 교수는 “대만 취업자 1200만명 중 반도체 산업 종사자는 30만명에 불과하다”며 “지난해 평균 임금 상승률은 3.1%로 성장률(8.7%)에 크게 못 미쳤고, 전체 취업자의 69.7%는 평균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세대 간 양극화도 심각합니다. 대만 사회학자 린쭝훙 박사는 “1990년대 IT 제조업 붐과 2010년대 이후 반도체 붐 사이에 사회에 진출한 ‘잃어버린 세대’가 있다”며 “AI 붐으로 젊은 세대의 취업 시장은 뜨거워졌지만, 중년이 된 이들은 희생된 채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양극화가 지역적·공간적 격차로 이어지는 현상이 더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물과 전력, 환경의 대가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 성장은 엄청난 물과 전력을 요구합니다. TSMC의 물 소비량은 2020년 연간 7700만t에서 지난해 1억5100만t으로 5년 만에 2배로 늘었습니다. 이는 대만 시민 140만명이 1년간 사용하는 물의 양을 넘어섭니다. 전력 사용량도 같은 기간 1만6920GWh에서 3만990GWh로 급증해, 지난해 대만 전체 전력 소비의 9%를 TSMC가 차지했습니다.
이 같은 자원 집중은 주민들의 삶을 위협합니다. 신주과학단지 인근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민 톈서우시는 정부의 ‘스마트 절수’ 정책으로 논에 물을 대지 못했습니다. 가오슝 발전소 근처에 70년 넘게 살아온 황푸라이는 “부모와 장모, 형수, 여러 이웃을 폐암으로 잃었다”며 “발전기가 늘어나면 오염도 늘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물·전력 공급의 혜택은 대기업이 챙기고, 부작용은 저소득층과 지방이 감당하는 구조입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성장과 균형의 딜레마
대만의 사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하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이슈노트에서 “반도체 호조가 내수 증가를 이끌 것”이라면서도 “혜택이 일부 산업·계층에 편중되어 있다”며 “자원이 IT 부문으로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핵심산업 생태계 붕괴와 계층 간 불균형 심화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환경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메가프로젝트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탄소중립 정책을 후퇴시킨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이헌석은 “환경을 해치지 않는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한정하는 등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대만의 선택, 한국의 미래
대만은 반도체 산업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뤘지만, 그 대가로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 파괴라는 문제를 떠안았습니다. 한국은 지금 대만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더 균형 잡힌 성장 모델을 선택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술 혁신뿐 아니라, 그 과실이 사회 전반에 공정하게 분배되고 환경이 보호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대만 반도체 산업이 한국에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요?
대만의 사례는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반드시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 파괴를 동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은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분배 정책을 강화하고, 재생에너지 전환 등 환경 보호 대책을 병행해야 합니다.
TSMC의 물·전력 사용량이 얼마나 되나요?
TSMC의 물 사용량은 2020년 연간 7700만t에서 지난해 1억5100만t으로 2배 증가했고, 전력 사용량은 같은 기간 1만6920GWh에서 3만990GWh로 늘었습니다. 이는 대만 전체 전력 소비의 9%에 해당합니다.
대만의 ‘잃어버린 세대’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잃어버린 세대’는 1990년대 IT 제조업 붐과 2010년대 이후 반도체 붐 사이에 사회에 진출해 두 산업의 전성기를 모두 놓친 중년층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반도체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양극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의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