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의결한 '방어권 보장' 권고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2025년 2월 10일 해당 안건이 찬성 6명, 반대 4명으로 통과된 지 1년 8개월 만에 이뤄진 것으로, 인권위 내부는 물론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비판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원위원회 의결, 사과안 수정 통과
인권위는 12일 오후 제17차 전원위원회에서 '2025년 2월 10일 자 전원위원회 의결 폐기 및 대국민 사과 의결의 건'을 상정해 수정 의결했다. 최종안에서 과거 의결 폐기 조항은 제외됐지만, 기관 명의의 사과 내용은 통과됐다.
찬성표를 던진 위원은 이숙진·오영근 상임위원과 소라미·오완호·조숙현·김민문정 비상임위원 등 6명이다. 반대표를 던진 위원은 김학자 상임위원과 강정혜·한석훈·김용직 비상임위원 등 4명이다. 안창호 위원장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기권했다.
찬성 위원들, “과거 결정은 정치적 편향” 지적
회의 후 백브리핑에서 찬성 위원들은 “사과문을 별도로 작성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안 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결정문 외 별도의 사과문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숙진 상임위원은 회의에서 “인권위는 내부로부터 인권 옹호자로서의 자긍심에 손상을 입었다는 자조를, 외부로부터는 ‘내란옹호위원회’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당시 의결이 국가인권기구의 본래 책무에 부합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더 이상 공식 입장으로 유지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기관 의사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라미 비상임위원은 과거 결정문이 탄핵 반대 측 견해만 담고 있다며 “법에 대한 말이었다고 해도 다른 측 주장을 전혀 담지 않아 정치적으로 편향됐고, 윤석열을 방어하기 위한 논리를 사실상 담고 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대 위원들, “번복이야말로 정치적” 반박
반면 한석훈·강정혜 비상임위원은 지난해 권고가 탄핵심판 국면에서 적법절차를 보장하라는 보편타당한 내용이었다며, 이를 번복하는 안건이 오히려 정치적이라고 반박했다.
한석훈 위원은 인권위 3∼5급 승진 인사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재가가 나오지 않는 것과 관련해 “이 대통령 등 정치권이 인권위 결정을 문제 삼고 직원 인사를 미루는 것이야말로 인권위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용직 비상임위원은 “현재 위원회가 과거 의결에 내란 비호라는 범죄적 의미를 부여하고 기관 명의로 사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기관 명의 사과는 헌법상 자기 책임 원칙과 양심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말했다.
안창호 위원장, “계엄 옹호 아냐”…조직 안정화 강조
두 시간여 격론 끝에 표결 직전 입장을 밝힌 안 위원장은 “인권위 결정은 계엄을 옹호하거나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며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고, 진의에 대한 오해와 논란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원장으로서 조속한 조직 안정화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옹호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5명의 위원들이 제출한 이번 안건에 대해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안 위원장은 2024년 9월 윤 전 대통령의 임명안 재가로 임기를 시작했다.
시민사회와 직원들의 지속적인 비판
시민사회에서는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를 비롯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퀴어문화축제 불참 등 안 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 왔다. 인권위 직원들도 올해 들어 적극 행동에 나서, 지난 7월까지 과장급 간부 6명이 보직 반납을 선언했고 사무처 30개 전 부서가 안 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릴레이 성명을 냈다.
이날 오후에는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이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 위원장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안 위원장이 인권위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사안에 대해 직원에게 부당 지시를 한 정황이 있다며 직무 유기·직권 남용 등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향후 과제는?
이번 사과 결정이 인권위의 독립성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인권위는 반대 의견을 낸 위원들의 입장까지 담아 최종 결정문을 작성할 예정이다. 향후 인권위가 어떤 방식으로 조직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인권 옹호 기관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