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성폭력 2차 가해와 혐오 현수막 방치,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우는 법
대한항공 성폭력 피해자가 대법원 승소 후에도 직장 내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 청년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노동 환경 속에서 성적 위협과 맞서며 자긍심을 찾고 있고, 선거판에는 소수자 혐오 현수막이 다시 등장했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는 관행에서 벗어나 포용과 혁신으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대한항공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가해의 민낯은?
대한항공 직원 A씨는 2017년 직장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2019년 회사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대한항공은 가해자를 징계 없이 퇴직시켰다. A씨는 2020년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5년간의 다툼 끝에 2024년 11월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대한항공이 직장 내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에게 1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로 돌아온 A씨를 기다린 것은 환영이 아니라 2차 가해였다. 복직 전부터 부서장은 A씨를 두고 '회사와 분쟁해 온 사람', '조직에 대한 불신 가능성이 큰 사람'이라고 말했다. 복귀 후에도 단체 대화방에서 배제하는 등의 2차 가해가 이어지자 A씨는 최근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A씨는 부서 배치 과정에서도 '회사와 길게 분쟁해 정서적으로 회사와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 '기본적으로 상처가 있고 조직에 대한 불신 가능성이 큰 사람', '3개월은 지나야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직원들의 시선이 정리될 것', '나는 여럿 잘라봤다' 등의 말을 들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회사의 조사 방식이다. 회사는 '부서장의 발언이 2차 가해로 느껴졌는지'를 묻는 등 부서원 40여 명 전체를 상대로 전수조사를 진행하면서, 조사 과정에서 오히려 A씨의 신고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사실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었어요. 조용히 회사 다니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A씨)
A씨가 바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힘든 법정 다툼이 끝났으니 4~5년만 조용히 다니다 퇴직하자는 생각이었고, 다시 문제를 제기할 경우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걱정했다. 그가 다시 나선 힘은 딸이 준 용기였다. A씨는 이번에 다시 진정을 준비하면서 '엄마는 숨고 싶다'고 했는데, 딸이 '엄마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언론 인터뷰에도 나섰다. 조직 내에서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구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청년 여성 노동자가 '노가다'로 자긍심을 찾는 방법은?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렸지만 '청소 자영업자'의 길에 뛰어든 여성이 있다. 조영주씨는 청소업체를 6년째 운영하면서 겪은 자신과 다른 청년 여성들의 경험을 석사 논문 '청년 여성 자영업자들의 몸 노동 경험'에 풀어냈다. 그가 말하는 청소 자영업 이야기에는 동시대 청년 여성의 노동과 건강에 관한 의제가 맞물려 있다.
그는 공공 섹터에서 여러 일을 오가며 지쳤던 찰나, 청소업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청소는 정직하고 투명한 일이라고 느꼈다. A를 하면 A가 도출되는 일, 하는 만큼 눈에 보이는 일이었다. 청소학원에서 기계 조작법, 약품 사용법, 바닥 마감재의 종류 등 전문적인 지식을 배운 뒤 본격적인 청소 자영업의 길로 진입했다.
직접 경험해보니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 체감했다. 영세 자영업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는 자발적 선택으로 여겨지곤 한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임금노동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자영업자는 사회 안전망에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 여성 당사자로서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일도 만만치 않았다. 남성의 편의에 맞춰진 작업복과 장비, 남성이 다수인 현장, 경험에 따라 위계가 나눠지는 일의 특성 등이 청년 여성을 상대적 약자로 위치시켰다. 피해 사례는 책으로 써도 될 만큼 풍부했다.
도배 현장에서 2030여성 도배사를 미래의 여친이나 아내로 상정하고 추근거리는 경우는 상당히 흔해요.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는 것도 다수가 지적했고요. 일 알려준다고 뒤에서 허그하고 손잡기도 합니다. 싫다고 거부하거나 싫은 티를 내면 작업에서 배제돼요. (조영주씨)
그럼에도 여성들은 일에서 자긍심을 찾아냈다. 숙련이 쌓여가는 몸을 스스로 감각하는 과정을 통해 효능감을 많이 얻었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를 느끼고, 앞으로도 더 발전할 수 있겠다고 전망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너는 계속 노가다라고 욕해라. 나는 성장할 테니', '그래 나 노가다야. 어쩔래?'라며 점차 시선을 극복해 나간다.
조영주씨는 성별에 따른 근력 차이를 부정하지 않지만, 힘을 키우는 여성의 개별적 노력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짚는다. 여성들이 남성들만큼 무거운 것을 한 번에 드는 것이 평등의 의미는 아니다. 일터에 여성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일할 수 있도록 일터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는 표준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남성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과제다. 여성이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것을 막는 건 근력 차이보다 성적 위협에서 안전한 작업환경, 공평한 배움의 기회,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선거 현수막 혐오표현, 왜 기관들은 책임을 떠넘길까?
지방선거마다 소수자를 혐오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는 '동성애는 담배보다 유해하다', '동성애로 에이즈가 늘어난다' 등의 발언을 했다. 2021년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안철수 당시 예비후보가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거부할 권리', '보지 않을 권리'를 언급하며 도심 개최를 반대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퀴어 동성애 교육 추방'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어 논란이 됐다.
이에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6월 15일 국회에서 손솔 진보당 의원실 등의 주최로 '선거 선전물을 통한 정치인의 혐오표현 대응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박한희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는 성소수자 혐오가 선거 때마다 반복됐지만 국가 차원의 대응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선관위가 최소한의 우려라도 표명했다면 혐오가 반복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2025년 '옥외광고물법 금지광고물 적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광고물을 금지 대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민원이 접수되면 각 지자체는 공직선거법상 선거 현수막이라 조치가 어렵다고 답하고, 선관위는 혐오 여부 판단은 선거법상 권한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며 가이드라인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이푸른 변호사는 옥외광고물법과 행안부 가이드라인만으로도 일정 부분 철거나 조치가 가능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각 기관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혐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혐오표현과 차별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
타자와 연대하는 윤리, '얽힌 공감'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계는?
이러한 사회적 배제와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철학적 성찰도 필요하다. 페미니스트 동물윤리 철학자 로리 그루언의 저서 얽힌 공감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동물을 귀엽거나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인간 중심의 감정을 넘어, 우리가 이미 수많은 동물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전통적 윤리 이론이 유사성에 집중하는 한계를 지적한다.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경험한다는 동일성만을 강조하면 타자의 삶이 지닌 고유하고 가치 있는 측면을 간과할 수 있다. 대신 저자는 개별적 존재의 차이를 다루는 페미니즘적 돌봄 전통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동물을 둘러싸고 작동하는 정치, 경제, 문화, 젠더적 기반과 권력 체계가 작동하는 구체적인 맥락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되, 그 차이가 우열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흑백이나 여남 등 이분법적 우열은 수많은 착취와 배제를 정당화해 왔다. 저자는 얽힌 공감을 우리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고, 타자의 필요와 취약성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관계 안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요청받는 경험적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일시적인 연민이 아닌 윤리적 실천이다. 가공식품 소비로 인해 서식지가 사라지는 오랑우탄처럼, 직접 만난 적 없는 존재와도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을 알아차리고 주의를 기울이며 책임지는 감각은 동물을 넘어 나보다 연약하고 소외된 모든 존재와의 공존으로 확장될 수 있다.
대한항공 성폭력 사건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무엇인가?
대한항공이 직장 내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에게 18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인정했습니다.
소수자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제도는 무엇인가?
혐오와 차별의 명확한 기준점을 제공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입니다. 현재는 각 기관이 책임을 떠넘겨 옥외광고물법 가이드라인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중심의 일터에서 자긍심을 찾는 계기는 무엇인가?
숙련이 쌓여가는 몸을 스스로 감각하며 효능감을 얻는 과정입니다. 타인의 혐오적 시선보다 자신의 성장과 발전 가능성을 중시하는 태도로 노동을 재의미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