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중복은 잊어라… 제주만의 특별한 ‘닭 먹는 날’ 이야기
8월 2일, 제주에서는 또 하나의 닭 먹는 날이 있다. 바로 음력 6월 20일이다. 이날은 제주 사람들이 예로부터 ‘닭 잡아먹는 날’로 여겨 온 날로, 한여름 농사일을 마친 가족이 닭을 나눠 먹으며 지친 몸을 달래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온다. 초복과 중복이 지났지만, 제주에서는 오늘이 진짜 보양식의 날이다.
제주만의 독특한 세시풍속, 음력 6월 20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초복·중복·말복을 챙긴다면, 제주 사람들은 음력 6월 20일을 ‘닭 먹는 날’로 기념했다. 이날 닭을 잡아먹으면 보약이 돼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다고 믿었다. 날짜는 달라도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닭을 먹고 기운을 보충한다는 의미는 복달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이 펴낸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제주 음식 이야기’(허남춘·허영선·강수경 저)에 따르면, 이 풍습은 농사 주기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화산섬 제주에서는 논 대신 밭농사가 생업의 중심이었다. 겨울 농사로 보리를 기르고 여름 농사로 조·콩·팥·고구마 등을 재배한 제주 사람들은, 보리 수확과 여름 작물 심기를 마친 음력 6월 20일께 닭을 잡아먹으며 지친 몸을 추스렸다.
“농사가 딱 끝난 때가 유월 스무날이라. 사람들이 막 버치지(지치지). 여름 농사 콩·조·팥 같은 농사, 고구마 같은 거 그때 딱 끝나. 갈고, 심고. 가을 들어야 거둬들이지만 … 망종 되면 선보리라 없다고 해. 농사가 완전히 다 익어버려. 보리 베고 그 시기쯤 농사가 다 끝나면 유월 스무날이 되어. 음력으로.”
자연의 흐름에 맞춰 농사를 짓고 그 주기에 따라 몸을 쉬게 하며 음식을 먹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왜 하필 닭이었을까?
당시 닭은 지금처럼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소는 밭을 갈고 짐을 나르는 중요한 노동력이었고, 돼지도 집안의 큰 재산이어서 혼례나 장례, 제사 같은 큰일이 있을 때나 잡았다. 닭 역시 귀했지만 소나 돼지보다는 기르기 쉬웠다. 집집마다 이른 봄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를 마당에 풀어놓고 길렀고, 다섯 달 가까이 자란 닭은 음력 6월이면 제법 살이 오르고 육질도 단단해졌다. 복날 상에 오르는 자그마한 영계와 달리 몸집이 커 온 식구가 나눠 먹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한 해 농사를 무사히 이어온 가족에게 닭 한 마리는 고단함을 달래는 귀한 음식이자 남은 여름을 견디게 하는 보양식이었다.
섬이라는 환경이 만든 독특한 여름나기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환경도 제주만의 여름나기 풍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데다 더위가 심하면 가까운 바다나 용천수에 몸을 담가 열을 식힐 수 있어, 육지처럼 여러 종류의 보양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오늘날 제주의 ‘닭 먹는 날’
오늘날 제주에서도 초복·중복·말복이면 삼계탕집이 붐빈다. 전국적인 복달임 문화가 퍼지면서 제주 사람들에게도 복날 삼계탕은 익숙한 여름 풍경이 됐다. 대신 음력 6월 20일 닭을 잡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한여름 농사일을 마친 가족이 닭 한 마리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수고를 위로하고 남은 여름을 날 힘을 얻었던 풍습은 제주 사람들의 삶과 계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마침 올해 닭 먹는 날은 온 가족이 모이기 좋은 일요일이다. 초복도, 중복도 지났지만, 제주에서는 바로 오늘이 닭 먹는 날이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제주에서 음력 6월 20일에 닭을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날은 한여름 농사일(보리 수확과 여름 작물 심기)을 마친 시기로, 지친 몸을 달래고 남은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닭을 잡아먹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초복·중복·말복과 제주의 ‘닭 먹는 날’은 어떻게 다른가요?
초복·중복·말복은 중국에서 전래된 세시풍속으로 경일(庚日)을 기준으로 정해지지만, 제주의 ‘닭 먹는 날’은 음력 6월 20일로 농사 주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풍습입니다. 의미는 비슷하지만 기원과 날짜가 다릅니다.
오늘날 제주에서도 이 풍습이 이어지고 있나요?
전국적인 복달임 문화가 퍼지면서 음력 6월 20일에 닭을 잡는 모습은 드물어졌지만, 제주 사람들의 삶과 계절의 기억 속에 그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