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장 지아장커 감독이 지난 10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포럼에서 화상 기조발제를 하며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의 창작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AI를 막는 대신 활용하면서 인간 창작자의 저작권과 일자리를 지키는 규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2월 공개된 5분짜리 단편 '지아장커의 댄스'는 이 논쟁의 상징이 된 작품이다. 영상 속 AI로 만들어진 '지아장커'가 진짜 지아장커에게 웃으며 말한다. 주름을 펴 드리고 살도 5kg 빼드렸다고. 그리고 묻는다. 자신이 작품인지 복제품인지.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영상의 모든 장면은 중국 바이트댄스의 AI 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 2.0으로 제작됐으며, 이 도구는 올해 초 이른바 '시댄스 쇼크'를 일으켰다.
AI와 예술가는 공존할 수 있는가
지아장커는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AI 영화의 미래: AI와 예술가는 공존할 수 있는가' 포럼에서 핵심 메시지를 던졌다.
AI 기술의 도래는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를 활용할 때 인간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관점으로 창작할지를 고민할 때입니다.
그는 끝없이 논쟁하기보다 직접 활용해 보며 장단점을 이해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지난 2년간 AI 단편 3편을 시험적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보도에서 그는 AI 활용 창작 전반에 인간의 감정과 의식이 스며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아장커의 전망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그는 AI가 아직 인간 실사 촬영 모방에 급급하지만, 머지않아 인간이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는 고유한 미학을 만들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동시에 저작권 윤리 문제가 남아 있다며, 인간 창작자의 권리와 영화 산업에서 사람이 일할 기회를 지키는 규칙 마련을 당부했다.
'딸깍'만으로는 안 되는 영화
현장의 창작자들은 AI 영상이 버튼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수정 과정에서 기존 생성분의 좋았던 부분까지 사라지는 일이 잦고, 크레딧 비용을 줄이려면 생성 전에 콘티와 기획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중국 AI 드라마를 준비 중인 손용호 감독은 AI 기술이 오히려 '필름을 아껴 쓰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 규모가 커지면서 기획과 제작 관리, 인물과 공간의 일관성을 관리하는 'AI 아티스트'라는 새 직종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AI 사극 '시구문'(2025)을 공동 연출한 유형준 감독은 고증의 어려움을 전했다. 조선의 풍경을 요청해도 일본이나 중국풍 이미지가 나오곤 해서, 한옥 사진과 궁중 회화 자료, 사극 의상을 참고자료로 적용해 배경과 캐릭터 기본값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연출의 경계를 묻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규동 감독은 AI 애니메이션 '작은 날개' 연출 경험을 들며 AI 아티스트가 만족스러운 '한 컷'을 완성작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각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요소의 순서와 빈틈을 채워나가는 영역은 연출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도구
AI는 여전히 단편이나 아이디어 구체화 단계에 주로 쓰이고 있지만, 창작의 문을 넓히는 효과는 분명하다. 연상호 감독은 신작 '실낙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네 편의 AI 단편 '실낙원-유니버스'를 2주 만에 완성해 온라인에 공개했다.
부산행 때부터 홍보차원의 스핀오프나 단편을 해보고 싶었으나 품이 많이 들어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네 편의 단편을 2주 만에 만들었다.
연 감독은 AI가 보편성의 집합 같지만 사용 방식에 따라 독창적인 예술활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중국 애니메이션 감독 리웨이도 AI가 시험 제작 비용을 낮춰 창작자들이 더 많은 소통과 반복 검증을 할 수 있게 한다고 분석했다.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도 합류했다. 제작사 크리에이티브망고는 15일 김 감독이 AI 단편 '웜 트레인'을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감독이 머릿속 장면을 실제 화면으로 확인하려면 1~2년이 걸렸지만 AI로는 이틀 만에 가능해졌다며, 지금까지 자신의 시나리오를 먼저 검열한 건 예산과 기술력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기성 감독들의 실험은 이미 흥행과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AI가 만든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음원차트 3위까지 올랐고, AI 제작 가상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공중파 TV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은 과제: 저작권과 일자리
기술의 속도가 빠를수록 제도의 공백은 커진다. 기존 창작물의 무단 학습과 저작권 침해, 일자리 위축에 대한 우려는 영화계 안팎에서 깊어지고 있다. 지아장커가 포럼에서 규칙 마련을 당부한 것도 이 지점이다. 젊은 창작자에게 AI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기회이지만, 그 기회가 소수 플랫폼의 이익으로만 귀결되지 않으려면 창작자 권리 보호 장치가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지아장커 감독의 AI 단편은 어떤 작품인가요?
지난 2월 공개된 5분짜리 '지아장커의 댄스'로, 바이트댄스의 시댄스 2.0으로 제작됐다. AI 생성 인물이 진짜 지아장커에게 자신이 작품인지 복제품인지 묻는 형식으로 창작의 본질을 되묻는 작품이다.
AI 영화 제작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요?
기존 창작물의 무단 학습과 저작권 침해, 그리고 영화 산업 일자리 위축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인간 창작자의 저작권 보호와 일할 기회를 지키는 규칙 마련을 요구했다.
한국 감독들도 AI를 활용하고 있나요?
연상호 감독은 네 편의 AI 단편 '실낙원-유니버스'를 2주 만에 공개했고, 김성수 감독은 AI 단편 '웜 트레인'을 제작 중이다. 유형준 감독 등은 AI 사극 '시구문'을 선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