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크리스마스 축구, 중세부터 이어진 민주적 축제 문화
크리스마스 시즌, 영국에서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족과의 시간, 풍성한 음식과 함께 축구가 명절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성탄절 기간에도 예외 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박싱데이와 새해 첫날을 포함해 일주일에 두 경기를 치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중세 공동체 문화에서 시작된 전통
유럽 대부분 국가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최소 2주간 겨울 휴식기를 갖는 것과 달리, 영국의 크리스마스 축구는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이 전통은 현대 상업 축구의 산물이 아니라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축구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구는 중세 공공 경기와 노동자의 휴일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가 1863년에야 공식 출범했지만, 공을 중심으로 한 집단 경기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중세 축구' 또는 '몹 풋볼'로 불린 이 경기는 1170년 기록까지 확인되며,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주요 경기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전통은 명맥을 잇고 있다.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의 '오크니 바 게임'은 크리스마스 당일 열리고, 잉글랜드 더비셔 애시번에서는 '로열 슈로브타이드 게임'이 치러진다. 축구는 오랜 세월 공공 축제의 일부였던 것이다.
노동계층을 위한 민주적 공간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며 크리스마스 축구는 더욱 제도화되었다. 역사학자 마틴 존스 교수는 "축구가 크리스마스에 열렸던 이유는 그날이 휴일이었고, 노동계층을 위한 공공 행사가 전통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싱데이는 1871년 제정된 은행휴일법에 의해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과거 고용주가 하인이나 노동자에게 선물 상자를 나눠주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축구 클럽들은 공휴일이 대규모 관중을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당시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가정 중심의 명절이 아니었다. 빅토리아·에드워드 시대 노동계층의 주거 환경은 열악했고, 집은 휴식보다는 탈출 공간에 가까웠다. 존스 교수는 "드문 휴일을 맞은 노동자들은 집에 머무르기보다 거리와 경기장으로 나서는 것을 선호했다"고 설명했다.
사회 변화와 함께 진화한 전통
1·2차 세계대전 사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연극, 영화 상영, 민속 행사, 각종 모임이 열렸으며, 축구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명절의 중심이 공동체에서 가정으로 이동하면서 크리스마스 당일 축구의 인기는 점차 사라졌다.
잉글랜드에서 열린 마지막 크리스마스 당일 리그 경기는 1965년 블랙풀과 블랙번 로버스의 경기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976년이 마지막이었으며, 현재는 북아일랜드만이 여전히 크리스마스에 '스틸스 오브 손스 컵' 결승을 개최하고 있다.
국립축구박물관 알렉산더 잭슨 박사는 "잉글랜드에서 축구가 유럽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일찍 대중적 관중 스포츠로 자리잡았다는 점이 이런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크리스마스에 축구가 없는 유럽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축구를 하는 영국이 오히려 특이한 사례라는 평가다.
영국에서 축구는 오늘날의 많은 크리스마스 관습보다 더 오래된 문화이며, 성탄절 풍경의 일부로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민주적 공동체 문화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