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서울 송파의 존속살해·아내 납치 사건과 제주 스토킹 살해 사건은 1997년 가정폭력처벌법 제정 이후 30년 가까이 다져온 보호 체계가 여전히 피해자를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접근금지 명령과 스마트워치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경향신문은 10월 17일 관계성 범죄 보호조치의 구조적 공백을 분석해, 조치 기간의 짧음, 갱신 사이의 행정 공백, 가해자 감시 부재라는 세 가지 허점을 짚었다. 전문가들은 패러다임을 '피해자 방어'에서 '가해자 통제'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전 예방을 설계 목표로 삼은 두 가지 조치
현행법은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에 대해 가정폭력처벌법의 임시조치와 스토킹처벌법의 잠정조치를 두고 있다. 두 조치 모두 처벌이 아닌 예방을 목표로 하며, 법원 판단 전 신속한 개입이 핵심이다.
공통 내용은 피해자와 동거인, 가족의 주거 등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이다. 차이는 두 가지다. 가정폭력 임시조치는 피해자 주거에서 가해자를 퇴거시킬 수 있지만, 스토킹 잠정조치에 있는 가해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은 불가능하다.
왜 보호 기간이 문제가 되는가
현행법상 가정폭력 임시조치는 최장 6개월, 스토킹 잠정조치는 최장 9개월까지만 유지된다. 이혼 소송이나 형사재판은 보통 1~2년을 넘긴다.
이경하 변호사는 경향신문에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 1~2년은 금방 지나가는데, 피해자 입장에서 6개월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세종시에서는 스토킹 혐의로 재판을 받던 70대 남성이 잠정조치 만료 직후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했다. 분리조치가 최장 10년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대 2년인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보호 기간은 눈에 띄게 짧다.
갱신 공백, 며칠이 비극으로
조치가 만료되기 전 연장 결정을 받지 못하면 소급 적용이 불가능하다. 기간이 지나면 법원에 처음부터 다시 신청해야 하고, 법원은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송파 사건이 단적인 예다. 피해자에 대한 임시조치는 지난달 30일 끝났지만 경찰의 재신청은 엿새 뒤인 6일에야 이뤄졌다. 법원이 “기존 처분이 만료돼 원점에서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결정을 내린 것은 범행 다음 날인 13일이었다. 며칠의 행정 공백이 파국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는 경찰이 재범을 막기 위해 임시조치를 신청했으나 한발 늦었고, 지급된 스마트워치도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범행 당시 기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스마트워치는 왜 실패하는가
가해자에 대한 감시 체계 부재는 더 치명적이다. 가정폭력 임시조치에는 전자장치 부착 처분이 없어,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다가와도 피해자가 스스로 알아채고 신고하지 않는 한 적발이 어렵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도 한계가 분명하다. 가해자가 급습하면 눌러봐야 소용이 없고, 제거한 뒤 살해하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 5년간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도 살해당한 피해자는 17명에 달한다. 투데이신문은 송파 사건에서 범행 당일 기기가 방전돼 작동하지 않았다고 전했다(투데이신문 보도).
수사 현장의 체감도 같다. 한 경찰은 경향신문에 “현행 임시조치엔 스토킹 가해자에게만 전자장치 부착할 수 있게 돼있어 아예 법으로 전자장치 부착을 의무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은 “스마트워치 실효성은 모르겠다”며 “피의자에게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는 없으니 '이거라도 하자'는 취지로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무엇을 바꿔야 하나: 가해자 통제로의 전환
전문가들이 내놓는 최우선 과제는 가정폭력 임시조치에도 전자장치 부착을 도입하고 보호 기간을 최소 1~2년 이상으로 늘리는 법 개정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찰청도 임시조치 전자장치 부착 도입과 가정폭력 가해자 대응 수준을 스토킹 수준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호주 일부 주의 '의무체포제' 도입 목소리도 있다.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의 재량이나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기대지 않고 가해자를 현장에서 즉각 체포하는 제도다. 피해자가 위험을 감당하도록 두는 대신 국가가 가해자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문제는 법과 제도가 정비될 때마다 현장에서 “가족이나 연인 사이 일”이라는 이유로 초기 개입이 지체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제도의 골격을 고치지 않으면 다음 사건은 시간문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통제하는 실효성 있는 보호 체계가 이번엔 실제로 마련될지 주목된다.
자주 묻는 질문
가정폭력 임시조치와 스토킹 잠정조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가정폭력 임시조치는 피해자 주거에서 가해자를 퇴거시킬 수 있지만 전자장치 부착은 불가능하다. 스토킹 잠정조치는 반대로 가해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이 가능하다.
임시조치·잠정조치 기간은 얼마나 되나?
가정폭력 임시조치는 최장 6개월, 스토킹 잠정조치는 최장 9개월이다. 만료 전 연장 결정을 받지 못하면 소급 적용이 불가해 법원에 처음부터 다시 신청해야 한다.
스마트워치는 피해자를 실제로 보호하나?
피해자가 직접 착용하고 위급 상황에서 신고해야 하는 구조라 급습에 취약하다. 최근 5년간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도 살해당한 피해자는 17명이며, 송파 사건에서는 범행 당일 기기가 방전돼 작동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