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이제는 중국 로봇 인재를 역수입한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로봇·자동화 분야 실무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글로벌 채용 시장의 흐름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순환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한 인력 이동을 넘어, 한국 산업이 중국의 첨단 기술 경쟁력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한국 기업은 중국 인재를 찾나
30년 가까이 글로벌 채용 시장을 경험한 김성민 세스나(CESNA) 대표는 최근 가장 주목할 변화로 '중국 인재의 한국행'을 꼽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기업이 한국의 반도체·배터리 기술 인력을 스카우트한다는 소식이 뉴스의 단골이었다. 이제는 반대 방향의 이동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로보틱스와 생산공정 자동화다.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과 자동화 설비로 대체하고, 공장 전체의 생산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찾고 있다. 현장에서 곧바로 프로젝트를 맡고 조직을 이끌 수 있어야 해 30대 후반에서 40대인 차·부장급 수요가 많다는 설명이다.
“예전에는 한국 기업이 미국과 일본 기술자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중국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임원급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차·부장급입니다. 글로벌 채용시장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 겁니다.”
김 대표는 “세스나에 중국 인재 채용을 의뢰한 곳만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3곳”이라며 “기업들도 어느 산업, 어느 회사의 어떤 기술자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조사한 뒤 찾아온다”고 말했다.
중국, 이제는 선도 인재를 배출하는 나라
김 대표에게 이 같은 변화는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30년 전 한국 기업이 일본 기술자를 찾아다니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삼성에서 근무한 그는 해외 기술 인력을 국내로 영입하는 업무를 맡았다. 러시아의 석박사급 기술자, 인도의 소프트웨어 인력, 일본의 전자 기술자 등을 찾아다녔다. 젊은 일본 기술자들이 한국행을 꺼리자 정년을 앞둔 50대 부장급 기술자를 대거 영입해 생산라인 운영과 제조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이후 한국 기업의 시선은 미국으로 옮겨갔다. 일본 소니와 파나소닉 출신 인재를 찾던 기업들이 미국의 통신·정보기술(IT)·첨단기술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선도 기업의 사람을 데려와 우리가 배우는 단계였다”며 “이제는 중국에도 한국 기업이 배워야 할 선도 분야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로봇, 생산 자동화처럼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빠르게 높아진 산업에서는 국적보다 기술과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 기업과 제품이 동남아시아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면서 현지에서도 중국인 기술자와 관리자의 이동이 크게 늘었다. 김 대표는 이를 “제품과 자본에 이어 사람이 움직이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삼성 경험이 창업의 밑거름이 되다
김 대표는 단국대 공대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항공과 에버랜드 전략기획실 등에서 근무했다. 당시 삼성의 글로벌 인재 확보 과정을 직접 경험한 일이 이후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세스나는 글로벌 인재 채용과 인사관리(HR) 컨설팅을 제공하는 크로스보더 리크루팅 회사다. 1999년 창업한 뒤 일찌감치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중국 상하이와 태국 등으로 네트워크를 넓혔다. 한국 기업의 해외 인재 채용뿐 아니라 미국·중국·동남아시아 기업과 각국 인재를 연결하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2026년 미국 비즈니스 매체 ‘비즈니스 치프(Business Chief)’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리크루팅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데는 삼성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인재제일’과 글로벌화 전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작은 한국 시장에서 헤드헌팅 회사끼리 경쟁하기보다 한국 기업이 세계로 나갈 때 함께 따라가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세스나의 해외 진출은 국내 대기업의 해외 인재 채용 확대와 맞물렸고, 지난 20여 년간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와 함께 사업도 성장했다.
해외 취업을 꿈꾸는 한국 인재에게 필요한 것
그렇다면 해외로 나가려는 한국 인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김 대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은 여전히 학력이나 출신 배경을 많이 보지만, 글로벌 기업은 이 사람이 기술자인지, 마케팅 전문가인지, 운영 전문가인지 자기 색깔이 분명한지를 본다”고 말했다. 한 분야에서 10~15년간 경험을 쌓은 사람이 해외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국 인재의 해외 진출 기회는 일반 사무직보다 반도체·디스플레이·소프트웨어 등 기술 분야에서 더 많다. 석박사 학위와 대기업 프로젝트 경험까지 갖췄다면 경쟁력은 더욱 높아진다. 반면 단순히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기존 경력과 무관한 직무를 선택하면 이후 경력을 확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전히 영어도 필요하지만, 원어민처럼 말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전화나 회의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자기 전문 분야를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며 “유창한 영어보다 자신의 업종과 기술을 영어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인재 역수입이 주는 의미
이번 변화는 단순한 채용 트렌드를 넘어, 한국과 중국의 기술 협력 가능성을 보여준다. 과거 한국이 일본과 미국의 기술을 배우며 성장했듯, 이제 중국의 선도 분야에서도 상호 학습과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기술 생태계가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