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배우 유해진에 대한 언어폭력과 극우 단체의 집회 위협은 단순한 인신공격을 넘어, 우리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시험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특정 배우의 발언이 아니라, 예술의 자유와 시민의 참여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위협하는 행위다. 우리는 지금, 유해진을 지킴으로써 더 큰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서 있다.
언어폭력은 테러와 같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으로 알려졌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의 사건을 소재로 한 시대극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특정 배우를 지목한 언어 테러는 드문 일이다. 유해진은 그동안 유별난 정치적 견해를 밝힌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진우 의원은 그의 외모를 비하하며 '북한상'이라는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개인에 대한 공격이자, 평화체제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북한에 대한 동시적 혐오다.
야당 정치인들의 파괴적 언어
한동훈, 주진우, 김태규, 나경원 의원 등 일부 야당 정치인들은 유독 파괴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이들은 대부분 검사나 판사 출신으로, 법의 언어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우리의 상식을 무너뜨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은 이런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그를 내란 혐의로 감옥에 보낸 후에도 포스트 윤석열을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은 그 생생한 증거다.
언론의 역할과 책임
문제는 이런 파괴적 언어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점이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내정 당시 한동훈 의원의 저급한 언어도 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성을 점점 마비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결국 주진우 의원의 혐오 발언으로 이어졌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법관 출신이라는 이들이 표현의 자유의 본질을 모르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예술의 역사적 연결
고대 아테네는 3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테네는 시민 모두가 노잡이로 참여해야 했고, 이는 재산이 없는 민중의 힘을 키웠다. 기원전 480년 이후, 아테네 민주주의는 바로 이 시기를 가리킨다. 한동훈 의원이 '동료 시민들'을 운운하며 흉내 냈던 페리클레스는 그 시기의 뛰어난 지도자였다.
이 시기는 세계 예술사에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된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연달아 등장해 그리스 비극을 탄생시켰고, 니체는 이를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대립과 통일로 정식화했다. 니체는 민주주의와 비극의 관계를 부인했지만, 데모스별로 조직된 합창단과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는 그 연결을 증명한다. 시민의 참여가 탁월한 예술 양식을 만들었고, 아테네의 정치와 경제는 이를 적극 지원했다.
예술에 테러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주진우 의원의 언어폭력에 이어, 극우 단체 신자유주의연대는 유해진의 집 앞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이것은 명백한 테러다. 이런 사태는 현실 정치와 깊이 연동돼 있으며, 윤석열 구속 이후 그의 분신들이 기득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기득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과도 연결된 구조적 문제다. 문화예술에 대한 소수 문벌과 집단의 정치적 테러는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과 방향을 가리키는 바로미터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유해진을 지키는 것이다. 모든 인종적, 문화적 혐오와 맞서는 것이다. 예술의 자유와 시민의 참여는 민주주의의 뿌리이며, 이를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모든 인종적, 문화적 혐오와 맞서는 일.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