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투쟁 1000일,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이 1000일을 맞았다. 하지만 이 역사적 순간을 맞이한 것은 축하가 아니라 중범죄 적용이라는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법정에서 다뤄지고 있다.
1000일의 기록, 변화를 위한 외침
"여기 오려고 콜택시를 불렀는데, 이용하려는 장애인이 많아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취소했습니다. 지하철을 탔지만 중간에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제시간에 올 수 없었습니다. 비장애인이 1시간이면 갈 거리를 3시간이 걸려서 왔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전장연 활동가 문애린이 서울중앙지법 결심 공판에서 담담하게 털어놓은 현실이다. 그러나 검찰은 그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적용된 혐의 중 전차교통방해죄는 '1년 이상 유기징역'의 중범죄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 3일부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펼쳐왔다. 2026년 1월 19일로 주말을 제외하고 정확히 1000일째다. 이 기간 동안 68번의 '지하철 출근길 탑승 시위'도 진행됐다.
사회 변화의 동력, 소수자의 권리
전장연의 투쟁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사회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가 확대되었고, 이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아차를 끄는 부모, 노인 등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리는 혜택이 되었다. 소수자가 만든 길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흥미롭게도 공공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전장연이 탑승 시위를 중단했던 2023년 1월에도 지하철은 216번 지연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지연 사례들은 전장연의 시위만큼 비난받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집회의 자유, 균형점을 찾아야
변호인단은 전차교통방해죄가 특수상해, 인신매매 등과 같은 중범죄이기에 범죄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든 법'의 김동현 변호사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척도"라며 "소수자일수록 제도권 정치에 요구할 수 있는 통로가 적기에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가 더 강하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의 결과는 전장연 활동가 2명의 운명만을 결정하지 않는다. 탑승 시위로 기소된 다른 활동가들의 선고에도 영향을 미치고, 9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개 여부도 좌우한다. 전장연은 이번 선고를 장애인 인권운동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미래를 향한 희망, 포용적 사회로
문애린과 한명희의 이야기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선천적 중증뇌성마비인 문애린은 초등학교 입학조차 거부당했지만, 독학으로 한글을 익히고 대학까지 진학했다. 장애인 부모를 둔 한명희는 새벽 4시 첫차를 타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거창하게 장애인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장애인에게 기회가 좀 더 주어지는 환경을 동료들과 맞이하고 싶어요." 선전전 1000일을 마친 문애린의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바람이다.
1월 29일 선고를 앞둔 지금,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포용성에 대한 시험대에 서 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