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손보 자사주 소각으로 보는 금융권 밸류업 혁신의 새로운 전환점
한국 금융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DB손해보험의 과감한 자사주 소각 결정이 업계 전반의 밸류업 혁신을 견인하며, 보수적 경영에서 벗어나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는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DB손보의 혁신적 결정, 시장의 긍정적 반응
23일 DB손해보험 주가는 1.7% 상승하며 사흘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사흘간 누적 상승률은 4.6%에 달한다. 이달 초 11만원선까지 하락했던 주가가 이제 13만원대를 바라보는 수준까지 회복된 것이다.
이러한 강세의 배경에는 DB손보의 1752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 결정이 있다. 회사는 22일 이사회를 통해 141만6000주를 26일 소각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기존 자기주식을 소각하는 방식으로, 자본금 감소 없이 발행주식 수만 줄어드는 구조적 개선을 의미한다.
보수적 보험업계에 부는 변화의 바람
그동안 한국 보험업계는 자사주 소각에 대해 소극적 자세를 보여왔다. 특히 DB손보의 경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2017년 1배를 기록한 이후 지속 하락해 지난해 기준 0.7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미 PBR 1배를 회복한 삼성화재와 비교하면 장기간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DB손보의 이번 결정은 실적 대비 주가 부진에 대한 시장의 비판과 밸류업 압박을 의식한 진보적 행보"라고 평가했다.
타 보험사들의 고민 깊어져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상장 보험사 중 자사주 비중이 10%를 넘는 곳은 다음과 같다:
- 미래에셋생명: 26.29%
- DB손해보험: 15.2%
- 한화생명: 13.49%
- 삼성화재: 13.44%
- 현대해상: 12.3%
- 삼성생명: 10.21%
이들 보험사는 이제 DB손보의 사례를 시장 비교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삼성화재의 선도적 접근법
손해보험사 중 가장 적극적인 자사주 소각 정책을 펼치는 곳은 삼성화재다. 올해 4월 136만3682주의 보통주와 9만2490주의 우선주를 소각했으며, 2028년 말까지 자기주식 비중을 5% 미만으로 낮히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자사주를 단순 주가 관리 수단이 아닌 주주환원 정책의 핵심으로 가장 명확히 설정한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현대해상의 신중한 접근과 구조적 제약
반면 현대해상은 자사주 비율이 12.3%에 달하지만 소각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지배구조상의 요인이 크다. 정몽윤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자 지분율이 22.85%인 상황에서,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제외하고 계산하면 최대주주 측 의결권 비율이 약 26%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사들의 구조적 한계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더욱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저축성 보험과 종신보험 비중이 높아 장래 지급해야 할 해약환급금 규모가 크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해약환급금준비금으로 적립해야 하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
특히 미래에셋생명은 자사주 비율이 26%를 넘어 업권 내 최고 수준이지만,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증권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지분이 60%를 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상장폐지에 필요한 지분율 95%를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
정부와 여당도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1월 기업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로 취득한 자사주는 1년 이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1년 내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금융위원회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상장사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자사주를 보유할 경우 연 2회 보유 현황과 처리 계획을 공시하도록 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
업계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보다 소각 여부가 기업가치 평가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는 흐름 속에서, 자사주 비중이 높은 보험사일수록 밸류업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DB손보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주가 부양책을 넘어 한국 금융업계의 주주가치 중심 경영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 관행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진보적인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