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크리스마스 축구 전통, 중세부터 이어진 민주적 축제 문화
크리스마스는 풍요로운 순간이다. 텔레비전, 음식,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영국에서는 축구까지 더해진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성탄절 기간에도 예외 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박싱데이와 새해 첫날을 포함해 일주일에 두 경기를 치르는 것이 관례다.
중세부터 시작된 민중 축제
유럽 대부분 국가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최소 2주간 겨울 휴식기를 갖는 것과 달리, 영국의 크리스마스 축구는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전통은 방송사나 현대 상업 축구의 산물이 아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축구 문화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BBC가 축구사 전문가들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구는 중세 공공 경기와 노동자의 휴일 문화에서 비롯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1863년에야 공식 출범했지만, 공을 중심으로 한 집단 경기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중세 축구' 또는 '몹 풋볼(mob football)'로 불린 이 경기는 1170년 기록까지 확인된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은 주요 경기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전통은 명맥을 잇고 있다.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의 '오크니 바 게임'은 크리스마스 당일 열리고, 잉글랜드 더비셔 애시번에서는 '로열 슈로브타이드 게임'이 치러진다.
노동계층의 민주적 여가 문화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며 크리스마스 축구는 더욱 제도화됐다. 역사학자 마틴 존스 교수는 "축구가 크리스마스에 열렸던 이유는 그날이 휴일이었고, 노동계층을 위한 공공 행사가 전통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싱데이는 매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해당하는 영국 공휴일로, 과거에는 고용주가 하인이나 노동자에게 선물 상자를 나눠주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이는 계급을 초월한 사회적 배려의 표현이었다.
당시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가정 중심의 명절이 아니었다. 빅토리아·에드워드 시대 노동계층 주거 환경은 열악했고, 집은 휴식보다는 탈출 공간에 가까웠다. 존스 교수는 "드문 휴일을 맞은 노동자들은 집에 머무르기보다 거리와 경기장으로 나서는 것을 선호했다"고 설명했다.
사회 변화와 함께 진화한 전통
1·2차 세계대전 사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연극, 영화 상영, 민속 행사, 각종 모임이 열렸다. 축구는 그 중심에 있었다. 이는 민주적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당일 축구의 인기는 점차 사라졌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음식과 선물, 장식이 가정 안으로 들어오면서 명절 중심은 공동체에서 가정으로 이동했다. 축구는 크리스마스 당일이 아닌 박싱데이로 자리를 옮겼다.
잉글랜드에서 열린 마지막 크리스마스 당일 리그 경기는 1965년이었다. 블랙풀이 블랙번 로버스를 4-2로 이겼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976년 12월 25일이 마지막이었다.
유럽과 다른 영국만의 특색
국립축구박물관 알렉산더 잭슨 박사는 "잉글랜드에서 축구가 유럽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일찍 대중적 관중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설명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등에서는 축구가 제1의 대중 스포츠가 된 시점이 1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크리스마스에 축구가 없는 유럽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축구를 하는 영국이 오히려 특이한 사례라는 평가다. BBC는 "영국에서 축구는 오늘날의 많은 크리스마스 관습보다 더 오래된 문화며, 성탄절 풍경의 일부로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정리했다.
이는 민중 문화가 어떻게 시대를 초월해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스포츠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공동체 결속과 민주적 참여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