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척하는 사회, 위생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는 생명들
수세식 변기의 물레방아 소리와 함께 우리의 배설물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깔때기 모양의 세라믹 벽 안으로 쓸려간 똥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닌 듯 여겨지고, 우리는 마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똥을 누 적이 없는 사람처럼 화장실 문을 나선다. 현대 사회는 이처럼 청결의 문명을 완성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괴한 망각과 배제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숨겨진 배설물과 혐오의 대상이 된 고양이
며칠 전, 턱을 다친 길고양이의 상처를 소독해주려던 한 시민은 동네 주민들의 거센 원성을 들어야 했다. 이유는 고양이들이 눈 똥 때문에 파리가 꼬이고, 여름철 창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지만, 결국 고양이의 상처조차 소독해주지 못한 채 헤어져야 했다. 길고양이가 똥을 누는 것이 왜 그토록 격렬한 분노를 유발하는 걸까. 사람도 똥을 누고, 고양이도 똥을 눈다. 당연한 이 생물학적 사실이 현대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은 수세식 변기라는 기술을 통해 자신의 배설물을 완벽하게 숨기는 데 성공했다. 냄새가 거슬리면 꽃향기가 나는 버튼을 누르고, 소리가 신경 쓰이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나온 뒤, 손에 거품이 자동으로 피어나는 핸드워시로 손을 씻으며 생각한다. 인간은 이제 똥을 누지 않는다고. 똥을 누는 것은 더러운 동물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아니면 적어도 인간만이 동물과 달리 '깨끗한' 똥을 눈다고 믿는 것이다.
진짜 똥은 따로 있다
하지만 정말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 자연으로 돌아가 분해되고 순환하는 고양이의 똥보다, 지구가 도저히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거대한 플라스틱 덩어리들 아닌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포장재. 이것이야말로 생태계가 흡수하지 못하는 인류의 가장 독성 강한 배설물이다. 우리는 자연으로 분해되는 유기물의 냄새에는 코를 막고 분노하면서, 지구의 순환 시스템을 파괴하는 합성수소의 쓰레기에는 무감각하다. 청결의 기준이 생태계의 순환과 공존이 아니라, 인간의 시야와 후각에서 얼마나 멀리 치워버리느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위생, 폭력과 배제의 구실이 되다
'청결하지 못하다'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권력이 약자를 짓밟는 정당성으로 쓰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위생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일본 헌병들에게 구타와 모욕을 당해야 했다. 1922년에는 집에 먼지가 약간 앉았다는 이유로 순사에게 채찍을 맞고 군도로 다리를 찔린 사건이 있었다. 1926년에는 위생 행정을 빌미로 여성을 강제로 탈의시키고 겁탈하려 했으며, 1935년에는 청결을 이유로 노인을 발로 차고 여성의 뺨을 때려 고막이 터지는 만행이 자행됐다.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들리지만, 이 폭력의 논리는 오늘날 타자에게로 그 방향을 바꿔 반복되고 있다. 조선인 대신 이제는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위생을 유지하지 않는 동물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때리고 채찍질하는 대신, 쫓아내고 강제 이주시키거나 포획해 안락사시킨다. 민원 전화 한 통이면, 우리와 같은 청결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서식지에서 쫓아낼 수 있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 위생은 더 이상 공중보건의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다른 생명을 배제하는 폭력의 도구로 전락했다.
접근할 수 없는 화장실, 단단해지는 성벽
이러한 배제의 논리는 인간 사회 내부에서도 예외 없이 작동한다. 낯선 동네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골목길을 헤맸던 경험을 떠올려보자. 거리에는 새로 지은 고급 건축물이 즐비했지만, 외부인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도록 비밀번호 장치로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입주민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도록 울타리를 친 아파트 단지처럼, 도심의 화장실에도 단단한 성벽이 세워져 있다. 결국 카페에 들어가 음료값을 지불한 뒤에야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손을 대면 수돗물이 흘러나오며 바람까지 불어주는 고급스러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누워도 될 만큼 깨끗한 그 공간은, 돈을 지불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배제의 공간이었다.
생명과 공존하기 위한 겸손한 선택
당신의 화장실은 어떤가. 화장실이 몇 개인지, 비데가 있는지, 환기는 잘 되는지, 습도와 향기는 어떤지. 현대인에게 화장실은 청결의 상징이자 삶의 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필자의 집에는 화장실이 사실상 없다. 작년 겨울 구조한 병들고 나이 많은 길고양이 두 마리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요강을 쓴다. 평생 변기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던 할머니처럼, 요강에 오줌을 누고 똥을 싼다. 그리고 매일 내가 눈 똥 냄새를 맡는다. 인간도 똥을 눈다.
이 냄새는 불쾌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자연의 순환 안에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겸손한 증거다. 우리가 망각한 배설의 현실을 직면하고, 나와 다른 생명의 존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위생이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존과 평화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청결의 기술은 인간을 더 위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누구인지 잊게 만들었다. 이제는 기억해야 할 때다. 인간도 똥을 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