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묘 하나가 주는 위로, 잊혀진 영혼과의 마지막 인연
한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가 무속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방송에서 “신을 받으면 모든 것이 영화처럼 보일 줄 알았다”고 말했다. 농담 섞인 이야기였지만, 영적인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각자의 방식과 깨달음이 있고, 사람의 몸과 마음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깨달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얼마 전, 늦은 나이에 출가한 스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승가대학을 마치고 작은 사찰을 세웠다며 꼭 들러 달라는 부탁이었다. 속세의 인연이었지만 남다른 친분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하지만 절의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가족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남편과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부인과 자녀들에게는 축하보다 아쉬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괜히 오래 머물기 부담스러워 슬며시 일어나려는 순간, 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찾아온 것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숙소로 향했다. 늦은 밤, 아까부터 따라오던 존재에게 모습을 드러내도 된다고 말했다. 잠시 후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무슨 사연이십니까?”
그는 대뜸 술부터 마시고 싶다고 했다. 간단한 음식과 함께 술을 차려 주자, 그는 몇 잔을 비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전에 어부였고, 오래전 바다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뜻밖의 부탁을 꺼냈다. 다음 날이 부인의 구순 잔치인데, 그곳에 가서 자신의 말을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시신도 찾지 못하고 제대로 된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기에, 작은 가묘라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가족들이 알고 있는 제삿날이 사실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실제 기일은 이틀 뒤였고, 딸의 이름에 얽힌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하면 믿을 겁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날이 밝자마자 수소문 끝에 가족들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모두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내가 전한 이야기를 들은 구순의 할머니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그게 맞아요.”
떨리는 목소리였다. 딸 이름에 담긴 사연은 오직 부부만 알고 있던 비밀이었다. 할머니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올해도 그냥 넘어갈까 했어요.”
남편 제사와 자신의 생일이 비슷한 시기라 매번 챙기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주변의 권유로 잔치를 열게 되었고, 덕분에 남편의 마지막 부탁까지 듣게 되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제야 한을 풀겠네요.”
그 한마디에 오랜 세월의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 남아 가묘를 마련할 장소를 함께 살피고, 지관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역할을 맡게 되는 법이다.
요즘은 묘를 이장하거나 납골당으로 모시는 일이 흔해졌다. 시대가 변했고 생활 방식도 달라졌다.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조상의 묘를 옮겨야 한다면 최소한의 예와 정성은 필요하다. 조상을 공경한다는 것은 거창한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작은 가묘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존재했다는 마지막 증표가 되고, 남겨진 가족에게는 오랜 그리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돌아가신 조상에게 잘한다고 해서 당장 큰 복이 굴러들어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감사와 예를 잊지 않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양심 앞에서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세대를 건너 누군가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조상을 기억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