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지나간 마닐라 코리아타운, 1년 된 '코리안 헬프 데스크'의 약속
태풍이 물러간 마닐라의 하늘 아래, 한국인을 위한 필리핀 경찰의 특별한 치안 시스템이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오전, 필리핀 전역에 재택근무령이 내려지며 마닐라 경찰청 방문과 '코리안 헬프 데스크' 현장 취재는 한때 불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오전 10시 방문 시간이 다가오자 비가 그치고 하늘이 열렸다.
현장에 닿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취재진은 당초 전날 마닐라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기체 결함과 태풍으로 항공편이 막히며 자카르타에 발이 묶였다. 필리핀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귀국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끝에 싱가포르를 경유하기로 했다. 통상 4시간이 걸리는 자카르타∼마닐라 구간을 꼬박 24시간 만에 이동했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마닐라 말라테 코리아타운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를 전담하는 필리핀 경찰의 밀착 치안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코리아타운 중심에 선 24시간 치안 파수꾼
마닐라 코리아타운은 3만7천160㎡ 구역에 한인 약 500명이 거주하고, 한국계 업소 100여 곳이 몰려 있는 상업·유흥 중심지다. 식당과 술집, 상점, 주택 등이 밀집해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잦다. 그 중심에 코리안 헬프 데스크가 있다.
필리핀 경찰은 이곳에 경찰관 48명을 2교대로 배치해 신고 접수부터 피해자 지원, 수사·검거까지 맡기고 있으며, 24시간 연중무휴 운영된다. 지난해 8월 마닐라와 앙헬레스, 세부 등 한국인이 많이 찾는 3대 권역에 총 8개의 코리안 헬프 데스크를 설치하며 한국인 관련 범죄에 대한 밀착 대응에 들어갔다. 수도권 경찰청(NCRPO)도 180명의 추가 인력을 지원했다.
감시 인프라와 민관 공조 체계도 갖춰졌다. 한국 정부 지원으로 코리아타운 36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됐고, 주요 거리에는 비상벨이 마련됐다. 한국인 관련 사건이 접수되면 현장 경찰과 헬프 데스크, 주필리핀대사관이 정보를 공유하고 후속 조치에 나선다. 오토바이 순찰대와 검문검색 작전으로 범죄 가능성을 낮추고, 사건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하는 구상이다.
한국계 업소 앞에는 치안 유지와 범죄 예방을 알리는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경찰은 포스터와 전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안전 정보를 전하고, 한인사회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치안 현안을 논의한다. 신고자의 언어 장벽을 낮추기 위한 한국어 지원과 통역 서비스도 대응체계의 한 축이다.
범죄 해결률 100%, 실질적 성과로 입증
이러한 치안 활동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9일 아드리아티코와 산안드레스 거리 교차로에서 한국인 방문객이 현금 3만 페소를 소매치기당하자, 경찰은 CCTV를 추적해 피의자를 붙잡고 피해금을 모두 회수했다. 지난달 12일에도 강도 및 장물 취득 사건 피의자 2명을 검거했다.
마닐라 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1년간 코리아타운에서 한국인이 피해를 본 사건은 16건이었다. 중범죄와 경범죄가 각각 7건, 교통 관련 사건이 2건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인이 피의자로 연루된 사건은 8건으로, 중범죄 2건과 경범죄 6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전·후반기 범죄 해결률이 모두 100%로 미제 사건이 없었다고 밝혔다. 범죄 검거 효율성은 40%에서 66%로 높아졌고, 인구와 유동량을 고려한 범죄율은 0.87에서 0.52로 낮아졌다.
10년 전 비극에서 시작된 변화
이러한 치안 체계가 구축되기까지는 10년 전 발생한 한인 사업가 고(故) 지익주 씨 납치·살해 사건과 이를 둘러싼 연합뉴스의 끈질긴 추적 보도가 계기가 됐다. 지씨는 2016년 10월 앙헬레스시 자택에서 마약 단속 작전을 가장한 현직 경찰관들에 의해 납치된 뒤 경찰청 주차장에서 살해됐다.
주범인 라파엘 둠라오 전 경찰청 마약단속국 팀장은 2023년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가 2024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형 집행 전 도주했다. 주범 도주 후 자칫 묻힐 뻔했던 사건이었지만, 연합뉴스가 수년간 집요하게 사건 경과와 검거 문제를 추적 보도했고, 양국 정부도 사건 해결에 나섰다.
2024년 10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지씨 사건의 조속한 해결과 범인 검거 문제가 거론됐다. 지난 3월 이재명 대통령도 마르코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지씨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요청했다. 양국 정부가 긴밀히 공조한 끝에 지난 6월 9일 주범이 체포됐다.
한·아세안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마닐라 경찰청은 이날 한·아세안센터(AKC)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코리아타운 치안 현황을 공개했다. 아놀드 C. 산티아고 마닐라 경찰청장 직무대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