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발 쇼크가 한국 증시에 남긴 것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 인텔 주가가 하루 28.58% 폭락했다. 1974년 7월 이후 52년 만의 최대 일일 낙폭이다. 시가총액 약 1400억 달러(약 189조 원)가 하루 만에 사라졌다. 동아일보 www.donga.com 보도에 따르면, 샌디스크(13.5% 하락), AMD(10.9% 하락) 등 다른 AI 관련 기업 주가도 함께 무너지며 인공지능(AI)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국내 증시도 이달 첫 거래일인 2일 이 여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번 폭락의 배경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수요 폭증으로 역대급 실적을 내는 바로 그 순간, 같은 반도체 산업 안에서 인텔은 정반대의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사실상 '양날의 검'이 된 것이다.
PC용 CPU에 악재가 된 메모리 호황
인텔은 지난 3분기 매출 165억 달러(약 22조275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3배 이상 늘어난 약 25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4분기 매출 전망치가 150억~160억 달러로 시장 예상치인 170억 달러에 못 미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졌다.
문제의 핵심은 메모리 가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생산에 집중하면서 PC용 메모리 공급이 부족해졌고, 가격 상승이 PC 가격 인상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인텔의 CPU 수요까지 압박하고 있다. 인텔은 세계 PC 출하량이 올해 12%, 내년 1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3분기 PC 사업 매출은 81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9% 줄었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31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메모리입니다. 메모리 가격이 크게 올랐고, 2027년에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1980년대 중반 D램 사업에서 철수해 CPU 중심 기업으로 변모한 인텔에게, 예전에는 자신들이 주력으로 삼았던 바로 그 메모리 가격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펜앤마이크는 이번 급락이 메모리 가격 급등에 따른 PC 수요 훼손과 서버용 제품 공급 부족, 공장 사고와 투자 부담이 중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AI 투자는 지속 가능한가, 시장의 질문
이번 사태는 AI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던진다. 미국 자산운용사 에쿼티 아머 인베스트먼트의 조 티게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AP통신을 통해 시장이 막연한 기대의 단계를 지나 이제 구체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쇼 미(show me)'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알파벳은 지난달 28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의 121.4%를 투자에 썼다고 밝혔다. 영업으로 번 돈보다 더 많은 자금을 AI 인프라에 쏟아부었다는 뜻이다. 알파벳 주가는 이틀간 13.9% 급락했다. 올해에만 최대 2050억 달러(약 276조7500억 원)를 투자에 쓸 계획이다.
이달 기업공개(IPO)를 앞둔 앤스로픽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이 앤스로픽의 IPO 이후 신용등급이 투기 등급인 'BB'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투자자들에게 전했다고 보도했다. 투기 등급으로 내려가면 조달 금리가 치솟고, 앤스로픽이 반도체 등에 계획한 8000억 달러(약 1069조 원) 규모 투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제 시작된 불안
한국 증시의 입장에서 이번 사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반도체주 비중이 큰 코스피는 2일 장에서 인텔 폭락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미국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7.95% 급락했다.
다만 직전 거래일 코스피가 3%대 하락 마감한 만큼 저가 매수세가 몰리며 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화일보는 미국 반도체주 폭락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추가 하락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앤스로픽은 80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번 신용등급 우려로 자금 조달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중앙일보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리사 수 AMD CEO에 이어 지난달 31일 샘 올트먼 오픈AI CEO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잇달아 찾은 배경에도 메모리 확보 경쟁이 있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빅테크의 투자가 주춤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향후 전망, 무엇을 봐야 하나
남은 빅테크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가 시장의 불안과 기대 중 어느 쪽을 자극하느냐에 따라 국내 증시 변동성도 커질 전망이다. 한국 시간으로 이달 3일에는 애플이, 4일에는 AMD가 실적을 발표한다. 5일에는 ARM과 퀄컴이, 18일에는 엔비디아가 뒤따른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지는 이익의 원천인 동시에, 인텔과 PC 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지금의 구도가 얼마나 오래 갈지 주목된다. 리사 수 AMD CEO가 밝힌 것처럼, 빅테크의 투자가 주춤하면 그 여파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피하기 어렵다. AI 생태계 전반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인텔의 52년 만의 최악의 하루는 반도체 강국 한국에도 결코 무관한 사건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