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희귀 유전자 뇌전증 환자 '평생 데이터' 수집…치료 혁신 기대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국내 최초로 희귀 유전자 뇌전증 환자의 일상 데이터를 장기간 수집하는 대규모 자연사 연구에 착수했다. 이 연구는 환자와 가족의 삶을 개선하고 신약 개발을 앞당길 과학적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련 발작과 발달 지연을 동반하는 중증 소아 뇌전증은 최근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달로 원인을 찾는 사례가 늘었지만, 정작 진단 후 치료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 특성상 질병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체계적인 기록이 부족하고,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에 필요한 비교 기준 데이터도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연사 연구로 희귀질환 치료의 새 지평을 열다
서울대병원 김우중 소아신경과 교수팀은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의 지원을 받아 '희귀 유전자 변이에 의한 발달·뇌전증성 뇌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평생 추적 관찰하는 자연사 연구를 시작했다. 자연사 연구는 인위적 개입 없이 환자의 증세와 질환 진행을 표준화된 지표로 기록하는 방식이다.
이번 연구는 전국 10곳 이상의 대형병원과 환자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기관 협력 체계로 진행된다. 환자는 스마트폰 앱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면, 활동, 경련 등의 데이터를 직접 기록하며, 이는 신약 개발의 핵심 기준이자 환자별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과학적 근거로 활용될 예정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로 일상 속 데이터를 모은다
연구팀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라이프엑스와 함께 전용 앱을 개발 중이다. 보호자는 이 앱을 통해 발작 횟수, 이상운동, 수면 상태, 행동 문제, 삶의 질 변화를 전자일지와 동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다. 또한 상명대 윤희남 교수팀과 협력해 맞춤형 웨어러블 기기로 활동량, 수면 주기, 심박변이도 같은 연속 생체 신호를 실시간 수집한다.
이를 통해 수면의 질이나 자율신경계 반응이 실제 경련이나 증세 악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밀 분석하고, 디지털 바이오마커를 선제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김우중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의 삶을 대변하는 일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해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과 진료 가이드라인 개선을 이끌어낼 과학적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환자 가족과 함께 만드는 연구, 희귀질환 치료의 미래
연구팀은 아동의 신체 발달, 정서, 운동능력, 의사소통, 일상 의존도 등을 아우르는 표준화된 임상 평가지표를 전국 병원에 동일하게 적용해 데이터 신뢰성을 높였다. 또한 정기 워크숍과 심포지엄을 열어 가족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충과 치료 수요를 설계 단계부터 반영했다.
지난 7월 25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희귀 유전자 뇌전증 심포지엄'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호자, 의료진, 연구 인력이 모여 수면·행동 문제 해결, 유전체 기반 정밀의료, 복지·제도적 지원 등 실생활과 직결된 현안을 논의했다.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장 채종희 서울대병원 교수는 “환아와 가족에게는 명확한 진단뿐만 아니라 향후 치료 경로와 일상 돌봄에 대한 실질적인 길잡이가 절실하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환자들의 고통을 덜고 질환 관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서울대병원이 주관하고 분당서울대병원이 세부기관으로 참여하며, 인하대병원, 고대안산병원, 조선대병원, 충북대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 중앙대 광명병원, 경북대병원 등 전국 8곳 이상의 병원이 협력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척수성 근위축증(SMA) 신약 승인 과정에서 장기 추적 자료가 핵심 근거로 활용된 바 있으며, 뇌전증성 뇌병증 분야에서도 드라베 증후군의 'ENVISION' 프로젝트와 SYNGAP1 결손증의 'ProMMis'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