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브랜드 지키는 '선제적 IP 보호'…11조 짝퉁 시장에 정부가 뛰어든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유형 자산에서 무형 자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공장과 설비를 넘어 특허, 상표, 저작권, 영업비밀 같은 지식재산(IP)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한국의 첨단 기술과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을수록, 이를 노리는 기술 탈취와 위조 상품 유통도 함께 고도화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사후 대응을 넘어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선제적 IP 보호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K브랜드 인기에 비례해 커진 위조 시장, 피해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한국 기업 위조상품 규모는 97억 달러, 약 11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 전체 수출액의 1.5% 수준이다. 이로 인한 국내 기업의 매출 손실은 7조 원, 일자리 감소는 1만 4000개, 세수 손실은 1조 8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업계는 공식 집계되지 않은 피해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개별 기업의 대응은 한계가 뚜렷했다. 현지 당국의 수사 비협조와 낮은 손해배상액이 발목을 잡았고, 특히 중소기업은 해외 상표권 확보와 플랫폼 신고 절차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부, 'K브랜드 정부인증제도'로 해외 짝퉁 유통 선차단
지식재산처는 위조상품 유통 위험이 높은 73개 주요 수출국에 국가가 인증한 상표를 직접 등록하는 'K브랜드 정부인증제도'를 도입한다. 수출 제품에 인증 상표를 부착하면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정품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95억 원을 확보했고, 현재 한국지식재산보호원 홈페이지를 통해 1차 참여 기업을 모집 중이다. 접수 마감은 이달 11일이다.
위조상품 적발 시 대응 체계도 개편된다. 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정부가 현지 관계기관에 수사·단속 및 통관 보류를 직접 요청하는 범정부 대응망이 가동된다. AI 기반 온라인 감시망도 강화해 모니터링 대상국을 기존 8개국에서 115개국으로 확대했고, 지난해에만 온라인 위조상품 48만 건을 차단했다.
첨단 기술 유출, 전담 조직으로 막는다
반도체, 2차전지, AI 같은 국가핵심기술은 해외로 유출되면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기술 유출 자체를 막기 위해 전담 조직을 대폭 확대했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은 “과거 IP 보호의 핵심이 침해자를 많이 잡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침해 발생 전에 얼마나 빨리 위험을 발견하고 차단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기술과 브랜드, 콘텐츠는 더 이상 기업만의 자산이 아니라 국가의 핵심 전략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지식재산처는 지난 6월 기술범죄 대응 조직을 1개과에서 4개과로 확대하고, 기술경찰 인력을 27명에서 61명으로 증원했다. 신설된 '지식재산보호분석과'는 특허 정보와 기술 동향을 분석해 유출 위험을 사전에 포착하고, '기술유출특별사법경찰과'는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비밀 유출 사건을 전담한다. '기술디자인특별사법경찰과'는 특허·디자인 침해 수사를 담당한다. 지난 8월에는 형사법·디지털포렌식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 유출·탈취 대응 전문가 자문위원회'도 출범했다.
그 결과, 상반기 기술 유출·탈취, 위조상품 등 지식재산 침해 범죄자 총 347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이는 전년 동기(262명) 대비 32% 증가한 수치다. 위조상품 범죄에서도 전년 동기(141명) 대비 32% 증가한 186명이 송치됐다.
불법 콘텐츠, 긴급차단제로 즉시 대응
디지털 콘텐츠 불법 유통은 속도전이다. 웹툰·영상 등은 공개 즉시 복제돼 해외 서버와 가변 도메인을 통해 확산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시행된 '긴급차단제'를 통해 저작권 침해가 명백한 불법 사이트 1000여 곳을 즉시 차단했다.
수사 인프라도 강화됐다. 지난 6월 신설된 '저작권특별사법경찰과'는 디지털포렌식을 활용해 해외 서버 뒤에 숨은 불법 사이트 운영자를 추적한다. 인터폴 및 해외 수사기관과의 국제 공조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본 귀화 불법 공유 사이트 운영자를 국내로 송환하고, 베트남 및 북아프리카 기반 불법 사이트를 폐쇄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도적 처벌 수위도 대폭 상향됐다. 8월 시행된 개정 저작권법은 고의적 침해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고, 형사처벌 기준을 최고 징역 7년 또는 벌금 1억 원으로 강화했다. 원본 링크만 제공하는 중개형 플랫폼도 처벌 대상에 포함해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했다.
K브랜드 보호, 왜 지금 중요한가?
K팝, K뷰티, K푸드, 웹툰, 게임 등 한국의 문화와 기술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위조상품과 기술 유출은 단순한 기업 피해를 넘어 국가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의 선제적 IP 보호 체계는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국제 공조와 기술 기반 감시망을 통해 K브랜드의 가치를 지키는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