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감사 효율 높였지만…저가 수주 경쟁에 품질 경고등
인공지능(AI)이 회계감사의 생산성을 높이고 있지만, 국내 감사시장에서는 효율화 효과가 감사보수 인하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감사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2~3년 사이 주기적 지정감사를 마치고 자유수임 시장으로 돌아온 기업이 늘면서 회계법인 간 수주 경쟁이 다시 치열해진 가운데, AI를 활용한 감사시간 절감이 보수 인하 요구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저가 수주 경쟁의 구조적 배경은 무엇인가
회계업계는 최근 저가 수임 경쟁이 거세진 구조적 배경으로 먼저 자유수임 물량 확대를 꼽는다. 주기적 지정감사제는 상장사가 6년간 감사인을 자유선임한 뒤 3년간 금융당국이 지정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는 제도다. 2020년 첫 지정 대상 기업들이 3년을 채우고 2023년부터 순차적으로 자유수임 시장에 돌아오면서 고객 확보 경쟁이 다시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의 비용절감 요구도 가격 하방압력을 키우고 있다. 피감사기업은 감사의 질보다 제안 보수에 민감하고, 회계법인은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저가 덤핑 관행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감사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여기에 AI가 추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회계법인이 AI로 절감한 시간과 비용이 고위험 항목 검증이나 숙련인력 투입에 재투자되기보다 피감사기업의 보수 인하 요구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중위권 회계법인 관계자는 “선두 업체들이 AI를 활용해 20% 비용절감을 내세우면 그 밑의 법인들은 더 큰 폭의 절감을 제시해야 겨우 수주가 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대규모 AI 투자 여력이 있는 빅4와 달리 중견·중소 회계법인은 기술투자와 가격 인하 압력을 동시에 떠안는 셈이다.
감사보수와 투입시간은 어떻게 변화했나
감사보수 하락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사의 평균 감사보수는 2023년 2억6500만원에서 지난해 2억5200만원으로 2년 새 4.9% 감소했고, 올해는 2억4600만원까지 낮아졌다. 감사 투입시간도 금융당국이 공개한 자료 기준 2022년 2458시간에서 지난해 2348시간으로 3년 새 4.5% 줄었다.
낮은 보수가 감사품질에 미치는 위험은
문제는 낮은 보수가 감사품질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곽병진 한국회계기준원장은 “감사보수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투입시간을 줄이거나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저연차 회계사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저가 수임의 여파는 바로 나타나지 않고 2~3년 뒤에 나타날 수 있다”며 “상황이 계속 심각해질 경우 제2의 대우조선해양 같은 대형 회계사고가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의 대응은 무엇인가
금융당국도 제동에 나섰다. 금융위는 회계법인 간 과도한 수임경쟁으로 감사시간을 무리하게 줄이면 회계부정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합리적 이유 없이 현저히 적은 시간을 투입한 경우 심사·감리 대상 선정 때 우선 고려하기로 했다. 반대로 감사품질이 우수한 중견 회계법인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상위군 대형 상장사를 지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도 추진한다. 가격보다 품질에 투자한 법인이 보상받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저가 수임 경쟁을 끊으려면 기업들이 감사비를 줄여야 할 비용으로만 보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회계정보의 신뢰가 높아지면 투자자가 요구하는 위험프리미엄과 기업의 자본비용이 낮아지고, 같은 현금흐름을 내더라도 할인율이 낮아져 기업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 감사와 회계투명성에 쓰는 비용을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투자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높은 상속·증여세 부담이 기업의 자발적인 감사투자를 가로막는 유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주주 입장에서 회계투명성이 나에게도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감사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인센티브가 생긴다”며 “주가가 오르면 대주주도 유리한 메커니즘을 만들어줘야 기업이 자발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기업가치 상승이 대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회계투명성 비용 역시 투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건스탠리자산운용도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높은 상속세 부담이 지배주주 일가에 승계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낮게 유지하려는 유인을 줄 수 있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고착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곽 원장은 “‘무조건 상속세를 줄이자’라기보다 우리나라에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보면 상속세 이슈가 엮여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주식이나 스톡옵션 등 주가연동 보상이 상대적으로 약해 경영진 역시 회계투명성을 높여 자본비용을 낮춤으로써 기업가치를 키울 유인이 약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