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배우 박정자와 주호성이 11월 8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청년 예술인들과 마주 앉아 연극의 가치와 소극장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반세기 넘게 한국 연극을 지켜온 두 배우는 무대에 대한 애정과 함께, 위기에 처한 소극장 생태계를 살릴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행사는 '창고포럼 라이브 토크'로 열렸으며 박현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 함께했고 청년 연극인을 포함해 40여 명의 관객이 참석했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두 배우의 발언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 다음 세대 연극인들에게 무대를 지키고 확장하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저는 언제나 연극배우 박정자입니다”
박정자는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뒤 '대머리 여가수', '신의 아그네스', '에쿠우스' 등 수많은 무대에 섰다. 영화 '육체의 약속'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자녀목', '말미잘' 등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그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쓰는 호칭은 언제나 '연극배우'였다.
“요즘은 연극 무대, TV, 영화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죠.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지만 언제나 저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연극배우 박정자'라고 합니다.”
그는 “영화도 좋지만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내 모든 혼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역시 연극”이라며 무엇이든 허용되고 어떤 상상이든 펼칠 수 있다는 점을 연극의 매력으로 꼽았다. 다른 분야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했다.
“다른 분야에 출연하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분이에요. 카메라 앞은 낯설다. 연극 무대에서만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연극에 처음 매료됐던 순간도 그의 말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아홉 살, 극장 부민관에서 본 연극 '원술랑'이었다.
“소방 호스로 뱀을 표현하는 등 부족한 무대였지만 관객은 모든 것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었어요. 연극 무대라는 공간은 그러한 모든 표현이 용서되고, 일상과 상식을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주호성, “죽으면 이 작품이 대표작이 되도록”
주호성은 1969년 '분신'으로 데뷔해 '오델로', '레미제라블',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했고 '사의 찬미' 등을 연출했다. 한국평론가협회 '올해의 최고 예술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연기를 할 때마다 '지금 죽으면 내 대표작이 이 작품이 되도록 하자'고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연극이라 그런지 연기하는 시간이 쉬는 시간 같고 행복합니다.”
소극장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두 배우의 우려는 소극장 운영의 현실에 닿아 있다. 1975년 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중심에서 50년간 실험 연극을 선보여 온 공간이다. 연출가 방태수와 배우 겸 연출가 추송웅이 여기서 작품을 올렸고, 이원경 PD는 이 극장에 프로듀서 시스템을 처음 도입해 젊은 극작가와 연출가를 양성하며 창작극 발굴에 힘썼다.
그러나 이 극장은 반세기 동안 재정난으로 여러 차례 폐관 위기에 몰렸다. 2012년 서울시가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에야 한국연극협회 등이 위탁 운영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공공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미 사라졌을 공간이라는 뜻이다.
주호성은 소극장만의 고유한 경험을 강조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작은 극장에서 숨소리 연기까지 신경 써 가면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입니다. 대극장이나 TV 속 연기 관람과는 다른, 소극장만의 독특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박정자도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려지던 시절을 떠올렸다.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관객들이 무대에까지 올라와 좁게 끼어 앉아 공연을 보던 기억이 납니다. 불편했지만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려져 더 좋았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떠나간 동료들, 그리고 남은 과제
두 배우의 대화에는 동료들을 잃은 그리움도 배어 있었다. 주호성은 최근 세상을 떠난 최불암과 이순재를 언급하며 연극계가 이들의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이순재 선배에 이어 최불암 선배가 떠났습니다. 최 선배의 '맛있는 연기'와 의리, 정이 자꾸 떠올라요. 위축되는 마음도 들지만 연극계 모두 원하는 일을 더 힘차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정자가 청년 예술인들에게 남긴 말은 이번 포럼의 결론이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우리들보다는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더 열려 있을 것”이라며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서달라”고 당부했다.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도 무대를 지키겠다는 두 원로의 선언은, 창작의 자유와 실험의 공간을 사회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삼일로창고극장이 반세기를 버텨 온 방식, 즉 공적 지정과 위탁 운영이라는 모델이 다른 소극장들에도 확장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전점이다.
자주 묻는 질문
박정자는 언제, 어떤 작품으로 데뷔했나요?
박정자는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했으며, '대머리 여가수', '신의 아그네스', '에쿠우스' 등 다수의 연극 작품과 영화 '육체의 약속', '자녀목', '말미잘' 등에 출연했습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어떤 극장인가요?
1975년 개관한 서울 중구의 소극장으로,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50년간 실험 연극을 선보여 왔습니다. 2012년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 한국연극협회 등이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배우가 이날 강조한 과제는 무엇인가요?
소극장 특유의 관객과 호흡하는 경험이 사라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청년 예술인들이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