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서울의 오래된 분식집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경향신문이 2026년 10월 22일 서울시 '오래가게'로 선정된 떡볶이 노포들을 소개하면서, 마라와 로제 같은 새로운 맛이 유행하는 시대에도 변함없는 옛 맛이 살아 있는 곳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은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떡볶이 노포들이 시민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았다며, 가을철 떡볶이 여행을 제안한 바 있다. 유행은 바뀌어도 추억의 맛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신당동: 즉석 떡볶이의 시작
서울 떡볶이 이야기는 신당동에서 시작된다. 1953년 문을 연 마복림 할머니집이 그 중심이다. 마복림 할머니가 개발한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양념은 지금까지도 신당동 떡볶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맛으로 남아 있다.
주문한 떡볶이는 완성된 모습으로 나오지 않는다. 테이블 위 냄비에 떡과 어묵, 양배추를 담고 양념을 부어 손님이 직접 끓여 먹는 방식이다.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양배추가 숨을 죽이고 떡에 양념이 배어든다. 처음에는 말랑한 떡을 건져 먹고, 이후 라면이나 쫄면, 만두 같은 사리를 넣어 마무리한다.
마복림 할머니는 생전에 며느리에게 비법을 전했고, 그 맛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맵기만 한 요즘 떡볶이와 달리 고추장의 매운맛에 춘장의 구수하고 달큰한 맛이 먼저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마포 코끼리분식: 3대째 이어진 골목의 맛
마포구 도화동, 공덕역과 마포역 사이에 오래된 즉석 떡볶이집들이 모여 있다. 그중 코끼리분식은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3대째 운영되고 있다.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달큼하고 짭조름한 양념 냄새가 먼저 올라오고, 단맛과 짠맛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뒤 끝에 은은한 매운맛이 남는다.
이 집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떡볶이만 먹지 않는 것이다. 야끼만두와 김말이, 못난이튀김을 함께 넣어 국물에 졸이는 것이다. 특히 못난이튀김은 국물을 충분히 머금었을 때 맛이 달라진다. 자작한 양념에 적셔 으깨면 튀김의 고소함과 달큰한 양념이 한데 섞인다. 서울관광재단도 이 먹는 법을 코끼리분식의 보미로 소개했다.
마지막 순서는 볶음밥이다. 떡과 튀김을 건져 먹고 남은 양념에 계란과 밥을 넣으면, 양념이 밥알에 골고루 묻어 고소한 마무리가 된다.
면목동 잉꼬네떡볶이: 깻잎 한 줌의 승부
중랑구 면목동 주택가 골목의 잉꼬네떡볶이는 1978년부터 이어온 곳이다. 당시 망우동 일대에 7개 학교가 모여 있던 시절 형성된 떡볶이 포장마차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다시 그 아들로 이어져 현재 3대째 가게를 지키고 있다.
첫맛은 얼큰하고 칼칼하다. 그런데 양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게 썬 깻잎이 들어 있다. 진한 양념 사이로 깻잎 특유의 향이 올라오면서 매운맛이 조금 가벼워진다. 테이블에 놓인 후춧가루를 한두 번 톡톡 뿌리면 매운맛과 향이 한층 또렷해진다. 납작만두를 국물에 푹 적셔 먹는 것도 빼놓기 어렵다.
요즘 떡볶이집은 매운맛의 강도를 숫자로 표시하거나 각종 토핑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잉꼬네떡볶이는 깻잎 한 줌과 후춧가루 한 번으로 맛을 완성한다. 단순해서 오히려 오래 기억되는 맛이다.
이수 애플하우스: 전통의 무침군만두
동작구 이수역 인근의 애플하우스는 반포의 작은 상가에서 시작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즉석 떡볶이집이다. 오래된 분식집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 달리 현재는 비교적 넓고 깔끔한 공간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이 떡볶이와 함께 주문하는 메뉴는 무침군만두다. 군만두를 바삭하게 튀긴 뒤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것이 특징이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튀김과 달리, 이미 양념을 한 번 입힌 만두라 바삭한 튀김옷과 매콤한 양념을 한입에 느낄 수 있다. 떡볶이가 주인공이라면 무침군만두는 이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다.
은평 코스모스분식: 1990년대 DJ 부스의 추억
은평구 구산동 골목의 코스모스분식은 1980년대 초 문을 열어 4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곳이다. 구산역 인근 학생들에게는 오랫동안 학교 앞 분식집이었고, 지금도 당시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즉석 떡볶이는 짜장과 고추장 양념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1990년대에는 가수 김장훈이 가게 안에서 DJ 부스를 운영하며 손님들의 신청곡을 틀어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음악을 듣던 공간이었던 셈이다. 중년 손님에게는 학창 시절의 기억을, 젊은 손님에게는 요즘 분식집에서 보기 어려운 복고풍 풍경을 건넨다.
관악 미림분식: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맛
관악구 신림동의 미림분식은 미림여고 인근에서 1988년부터 영업해온 노포다. 오랜 세월 학교 앞을 지킨 만큼 이곳의 떡볶이는 음식이라기보다 학창 시절의 기억에 가깝다.
양념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 미림분식의 특징이다. 고추장 떡볶이는 매콤하면서도 달고 짭조름한 옛날식 맛에 가깝고, 짜장떡볶이는 춘장 특유의 구수하고 달큰한 맛이 앞선다. 떡과 어묵을 건져 먹고 남은 양념에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조합도 단골들이 즐겨 찾는다.
부모 세대가 학창 시절 찾던 맛을 자녀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특별함이다. 지나치게 정돈된 요즘 분식집과는 다른, 오래된 가게의 분위기와 학생들이 오가던 흔적이 한때 이곳에서 떡볶이를 먹었던 손님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떡볶이 노포는 어디인가요?
신당동의 마복림 할머니집이 1953년 문을 열어 가장 오래된 곳으로 꼽힙니다. 이 집은 즉석 떡볶이 문화가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석 떡볶이는 어떻게 먹는 건가요?
테이블 위 냄비에 떡과 어묵, 양념을 넣고 직접 끓여 먹는 방식입니다. 떡을 먼저 건져 먹은 뒤 라면, 만두 등 사리를 넣고, 마지막에 남은 양념으로 볶음밥을 만들어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떡볶이 노포들은 어떻게 맛을 지켜왔나요?
대부분 가족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마복림 할머니집은 며느리에게, 잉꼬네떡볶이와 코끼리분식은 각각 3대째 가게를 지키며 비법과 양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