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접촉을 사실상 끊어온 유럽이 2026년 10월 들어 태세를 전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유럽은 러시아와의 직접 협상에 나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 흐름의 신호탄은 10월 27일 북유럽 정상 두 사람의 깜짝 통화였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과 약 90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전쟁 종식을 촉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이 유럽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 지도자로서 행동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 통화로 두 사람은 향후 유럽이 러시아를 상대할 핵심 창구로 부상했다고 유로뉴스가 28일 진단했다.
유럽의 딜레마: 대화냐 고립이냐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을 채운 올해 초에도 유럽 안에서는 러시아와의 직접 대화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잇달아 대화론을 꺼냈지만, 독일과 폴란드, 스웨덴, 덴마크, 발트 3국 등 대러 강경 국가들이 러시아의 평화 의지를 문제 삼으면서 물밑에서 소통 채널을 열었다는 이유로 국제적으로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이번 통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일보는 로이터통신 보도를 인용해 이례적인 통화가 유럽 지도자들 사이에서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즉각 우려를 표명했고,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럼에도 유로뉴스는 지금 상황이 지난 6월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짚었다. 유럽은 이제 직접 대화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조선비즈가 전한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두 정상은 통화에서 긴장 완화와 종전을 위한 외교적 노력 강화를 전달했고,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별도로 통화했다.
트럼프의 편들기가 바꾼 판도
유럽의 태도를 바꾼 결정적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푸틴 대통령과 '경유딜'을 맺어 대러 제재를 해제했고, 러시아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개 비난하며 우크라이나 대통령 교체까지 거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방어에 필수적인 위성 서비스 스타링크 속도가 느려지고, 미사일 조기경보 시스템에 갑자기 차질이 빚어진 일도 유럽의 위기감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라도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항복을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협상 테이블에 직접 앉아 유럽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러시아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고, 흑해 항로 봉쇄로 식량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정세가 악화하고 있는 점도 휴전의 절실함을 높인다. 허핑턴포스트는 북유럽 정상들이 후방 공습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긴장 완화를 촉구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도 입장 바꿔 "유럽 전체와 대화해야"
주목할 변화는 러시아에서도 나타난다. 그동안 유럽의 협상 참여를 여러 차례 거부해온 러시아가 이번에는 오히려 유럽 참여를 원하고 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지난주 "우크라이나와만 대화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유럽 전체와도 대화해야 한다"고 말해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크렘린궁도 세 나라 정상이 향후에도 직접 전화 연락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혀 3자 통화가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자간 협상의 첫 걸음
유럽연합(EU)은 내달 초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릴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 집행위원회와 유럽이사회 고위급 관리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파견할 채비를 하고 있다. 대표단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최측근인 뵈른 자이베르트 비서실장이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평화협상은 유럽이 배제된 채 미국과 러시아 양자 협상이나 우크라이나가 간헐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열려왔다. 내달 유럽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 종전을 둘러싼 다자간 협상이 처음으로 성사되는 셈이다.
민주주의와 국제법의 원칙을 지켜온 유럽이 강대국 논리에 내몰린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지켜낼지, 그 첫 시험대가 아부다비에서 열린다.
FAQ
스투브 대통령과 스퇴레 총리는 왜 푸틴과 통화했나?
두 사람은 10월 27일 약 90분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며 전쟁 종식과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통화 목적은 전쟁 종식을 위한 향후 협상과 관련해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동 성명에서 밝혔다.
유럽은 왜 지금 대러 대화에 나서나?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편들고 대러 제재를 해제하면서 유럽이 협상에서 배제될 위기감이 컸기 때문이다. 스타링크 속도 저하와 조기경보 시스템 차질 등 우크라이나의 방어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 참여를 반대하지 않나?
그동안은 거부해왔지만 이번에는 달라졌다.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유럽 전체와도 대화해야 한다"고 말해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