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271만 시대, 한국 사회의 공존 준비는 충분한가?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최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이주배경인구가 271만5천 명에 달해 전체 인구의 5.2%를 차지했다. 이는 20명 중 1명이 이주배경인구라는 의미로, 한국 사회의 다문화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 성장의 숨은 동력, 이주노동자들
이주배경인구 중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22만3천 명으로 81.9%를 차지하며, 이들은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농어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88만7천 명(32.7%)으로 가장 많고, 서울 47만5천 명(17.5%), 인천 18만 명(6.6%) 순이다. 경기 안산시는 11만3천 명으로 절대 수치가 가장 높고, 전남 영암군은 지역 인구 대비 21.1%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
여전한 차별과 인권 사각지대
하지만 이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바에 비해 받는 대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수많은 농촌 이주노동자들이 화장실도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최저임금 미지급과 폭언, 폭행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아리셀 참사에서 희생된 23명 중 대부분이 불법파견 형태로 일하던 이주노동자였던 사실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의 단속 위주 정책도 문제다. 지난 10월 APEC 정상회담을 명분으로 한 단속 과정에서 20대 베트남인 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건은 무리한 단속이 낳은 비극이다. 근본적인 노동환경 개선 없이 인력 부족만 해결하려는 정책적 접근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확산되는 혐오와 차별의 그림자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번진 이주민 혐오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수, 극우단체의 혐중시위가 거리에서 벌어지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김희교 광운대 교수는 "한국은 인종주의 국가의 초입에 와 있다"며 "이 문제를 방관하면 건강하지 못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
전문가들은 이주민을 단순히 '일손'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일자리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나 최소한 '외국인 혐오 금지법' 제정을 통해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는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271만 이주민과의 진정한 공존을 위해서는 한국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과 제도적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혐오와 차별이 아닌 상생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