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38만명, 수익은 0원? 유튜브 너머를 보는 의사들의 실험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 인연을 맺은 세 전문의가 운영하는 여성건강 유튜브 채널 '우리동네산부인과'가 화제다. 구독자 38만 명을 넘어섰지만, 이들은 광고 수익을 전액 기부하고 유료 멤버십 수익도 채널에 재투자한다. 언뜻 보면 '돈이 안 되는' 채널이지만, 실제로는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환자가 찾아오는 병원 브랜드라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냈다.
홍혜리·추성일·권정은 세 원장은 2019년 첫 영상을 올린 이후 매주 금요일 업로드를 이어오고 있다. 채널이 성장하면서 셋은 함께 '헤스티아 여성의원'을 공동 개원했다. 유튜브 광고 수익은 서울대 어린이병원 완화의료센터 '꿈틀꽃씨' 등에 전액 기부하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유튜브 성공담을 넘어, 디지털 시대 의료 정보의 신뢰성과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AI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대량 생산하는 시대에, 정작 희소해지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광고 수익 전액 기부, 손익 구조는?
채널 개설 초기에는 외주 편집 비용과 제작비 지출이 유튜브 광고 수익보다 커서 실제로 적자 구조였다. 현재 구독자가 늘어나고 조회수도 증가했지만, 따로 광고를 하지 않는다. 이따금 '대박'이 나는 콘텐츠에서 들어오는 수익은 기부나 사회 환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채널 자체만을 독립된 사업체로 볼 때는 여전히 큰 이윤을 남기는 구조라기보다 재투자와 기부가 이어지는 선순환 형태다.
병원 브랜딩, 의도된 전략이었나
처음부터 '병원 개원과 브랜딩을 통한 수익 창출'을 정밀하게 계산하고 유튜브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올바른 여성건강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진정성에서 출발했다. 세 사람 모두 처음부터 개업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확하고 유익한 콘텐츠가 7년간 축적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라는 브랜드 가치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병원 브랜딩이라는 가장 확실한 구조가 우연히 생기게 된 셈이다.
실제로 유튜브를 통해 이미 이들의 성향과 진료 철학을 숙지하고 내원하는 환자들은 진료실에 들어설 때부터 깊은 친밀감과 신뢰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진료 효율성과 환자 만족도를 높여주고, 환자와 의사 사이의 '라포'가 쉽게 쌓이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유료 멤버십 '주민등록'의 의미
유료 멤버십 수익은 전액 기부가 아니라 채널 운영에 활용된다. 채널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진정한 팬들과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는 '찐팬 전용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도입했다. '우리동네 산부인과'라는 채널 이름에 걸맞게 동네 주민으로 등록되어 더 가까운 식구가 된다는 정겨운 의미로 '주민등록'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멤버십 회원들에게는 스페셜 라이브 방송, 추성일 원장의 저서 전자책 대여, 오프라인 모임 초대 등 실질적이고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한다.
기부처 선정 기준은?
기부처를 정할 때는 도움이 절실하지만 사회적 관심이나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소아·여성 의료 취약 계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세 명이 수련받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완화의료센터 '꿈틀꽃씨'뿐 아니라, 보육원, 베이비 박스 등에 기부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
유튜브 수익으로 개인 욕심을 챙기지 않는다는 진정성이 전달되면서 시청자들이 콘텐츠의 내용까지 진심으로 신뢰하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오프라인 진료실에서도 환자들이 의사를 향해 깊은 존중과 신뢰를 보내주는 최고의 브랜딩 자산이 됐다.
'의료 크리에이터 생태계'로의 확장
'우리동네 어린이병원·유방이야기·정형외과' 등 가족 채널 네트워크는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상업적 생태계 전략은 아니었다. '우리동산'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관련 과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전달도 필요하다고 느껴 우리소아과 채널이 시작됐다.
이후 주변 동료 의사들로부터 제작 노하우와 철학을 공유해달라는 요청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산부인과에서 연결되는 신생아 및 소아에 대한 니즈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의사들이 모여 올바른 의료 정보를 전파하는 대표적인 '의료 크리에이터 생태계'로 확장되는 선구적 모델이 됐다.
개인 브랜딩과 커리어의 변화
세 원장은 단순한 지역 산부인과 의사를 넘어, 미디어와 대중을 연결하는 '여성건강 대표 의사 크리에이터'로 커리어가 확장됐다. 방송 출연, 출판, 학회 발표, 의료 자문 등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이따금 생기면서 책임감도 커졌다. 진료실에서는 환자들이 미리 라포를 형성한 상태로 내원하기 때문에, 초진 환자라도 오랫동안 알아 온 사이처럼 편안하게 깊은 고민을 털어놓아 진료의 질과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
의견 충돌, 어떻게 해결하나
세 사람이 한 채널·한 병원을 함께 운영하면 의견 충돌이 있을 법하다. 실제 병원 개원 후 운영 방식이나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는 세 사람의 의견이 부딪히는 순간이 당연히 존재했다.
해결 방식은 단순하다. 개개인의 고집이나 자존심보다 무엇이 이익인가를 고민하고 대화를 통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부딪히는 사안이 생기면 세 사람이 토론을 거쳐 합의점을 찾고, 때때로는 양보하는 사람도 있다. 의학적인 영역에서는 철저히 데이터와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수용하며 서로의 전문 영역을 존중해 풀어간다.
의학적으로 100% 정답이 없거나 학회·의료진마다 선호하는 치료 옵션이 다를 때는 일부러 하나의 답으로 통일하지 않고 각자의 견해와 임상 경험을 그대로 방송에서 보여준다. 이것이 오히려 채널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AI 시대, 의사의 자리는 어디인가
AI가 여성건강 정보도 그럴듯하게 답하는 시대, 의료 정보 크리에이터에게 AI는 위협일까 도구일까. 이들은 단연 유용한 도구라고 말한다. AI는 방대한 논문 요약, 자료 수집, 초안 작성 등의 영역에서 제작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훌륭한 조력자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AI를 통해 대량 생산되는 시대일수록, AI는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의사 개인의 전문성과 검증 능력이 빛을 발하게 만드는 기회다. AI가 만든 정보의 오류(할루시네이션)를 가려내고 팩트를 최종 검증하는 것은 결국 전문의의 몫이기 때문이다.
AI 의료 정보, 주의할 점은?
AI 기반 의료 정보의 가장 큰 위험성은 환자 개개인의 예외성과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AI는 통계적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답을 그럴듯하게 제시하지만, 의학은 단순 데이터 집계가 아닌 개별 환자의 나이, 과거력, 현재 증상, 검사 결과를 종합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AI 정보를 접할 때는 참고용 힌트로만 활용해야 한다. AI의 답변을 절대적인 진단으로 신뢰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처방 및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최종 확인은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최근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AI를 활용한 마케팅이 점차 활발해지면서, AI 역시 객관적인 데이터보다는 특정 마케팅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이다. AI 모델이 학습하는 데이터나 제공하는 답변이 특정 병원, 제약사, 혹은 의료기기 업체의 상업적 목적에 의해 유도될 경우, 환자들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학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포장된 상업 광고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결국 객관성을 가장한 AI 마케팅은 환자들에게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고 정작 필요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진실된 팩트를 가려내 환자의 안전을 지키는 의사의 엄격한 검수와 진정성 있는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