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중국인들의 현실: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이웃들
한국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중국인 A씨(28)는 지난 11월 고향 후난성에서 한국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에는 '국경을 넘어 맺은 인연이 두 나라의 우정처럼 오래도록 이어지길'이라는 축복의 글이 걸렸고, 로제의 '아파트' 같은 K팝이 흘러나왔다. 양가 가족들은 언어가 달라도 서로를 챙기며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한국 사회에서 중국인들이 겪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A씨는 "후난성에서 본 '두 나라의 우정'은 유튜브나 SNS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혐중 시위에 맞선 생존 전략
명동에서 극우단체의 혐중 시위를 목격한 A씨는 "한국의 반중 정서가 일부 극우의 감정이라는 걸 알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양국관계가 악화되면 우리 가족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조선족 대학생 C씨(20)는 홍대에서 혐중 시위를 보고 "중국어를 쓰지 않고 한국인처럼 행동했다"고 했다. 부천에 사는 조선족 출신 귀화 한국인 D씨(59)는 집 근처에서 극우단체 시위를 본 후 "집 밖에서는 중국어를 쓰지 않는다"며 제주도 가족여행까지 취소했다고 털어놓았다.
분리된 공간, 나뉜 삶
대림동뿐만 아니라 부천, 광명 등 서울 인근 지역에도 많은 조선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부천역 남쪽 심곡본동에는 중국어 간판이 걸린 음식점, 부동산, 노래방 등이 늘어서 있어 작은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지역 내에서도 선주민과 이주민의 삶은 분리되어 있다. 한국인 가정은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교육 여건이 좋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가고, 학원 셔틀버스도 이주민 밀집 지역에는 잘 다니지 않는다.
이중의 고통을 겪는 청소년들
중국에서 뒤늦게 한국으로 온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E씨(16)는 "한국 드라마 속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기대로 왔지만, 언어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 센터 교사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부모와의 분리, 언어 장벽 등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며 "미래 사회 구성원이 될 아이들을 잘 보듬지 않으면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용적 사회를 향한 과제
류형철 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주민과 이주민 간의 관계 단절이 차별과 혐오를 키운다"며 "이주민을 도시 계획에 포함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거, 교육, 의료, 교통 등 모든 영역에서 이주민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며, 이주민들의 서사가 우리 도시의 기억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중 커플인 A씨와 그의 아내는 자녀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중국인 아버지를 둔 자녀가 한국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혐오가 아닌 포용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