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의 손녀가 전하는 '백범정신'…애국·애민·자주의 길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김구재단 이사장은 조부의 삶과 사상을 '애국, 애민, 자주정신'으로 요약했다. 그가 바라본 백범은 교과서 속 영웅이 아닌, 가족과 나라 사이에서 고뇌한 한 인간이었다.
김미 이사장은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조부의 어록을 담은 책을 펼쳐 보였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발자국을 어지럽게 남기지 말라는 시 '야설'의 한 구절,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길이 되니라'를 설명하는 그의 눈빛은 반짝였다.
김 이사장은 남편인 빙그레 김호연 회장이 1993년 사재를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한 이후 이사장으로 공익활동을 이끌어왔다. 백범김구기념관장도 맡은 그는 조부의 자서전 '백범일지'와 각종 어록을 섭렵한 '백범 전문가'다.
'백범정신'이란 무엇인가
김 이사장은 백범정신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애국, 애민, 자주정신'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스스로 책임지고 행동하며, 높은 문화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한 뒤 다른 사람과 나라에도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범이 보여준 애국의 자세를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 각자가 삶을 충실히 살되 능력껏 자신의 힘을 사회와 나누고, 타인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인간 백범, 가족과 나라 사이의 고뇌
김 이사장은 1949년 백범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뒤에 태어나 조부를 직접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인 김신 전 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가족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할아버님께서는 젊은 시절 관상에 대한 책에서 '관상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읽고 '마음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김 이사장은 회고했다. 이어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깊이 사랑하고,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할 일을 끝까지 하는 게 할아버님의 인생관”이라며 “스스로 특별한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덧붙였다.
그가 탄생 150주년을 맞아 다시 돌아본 조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위태롭게 버텼던 한 인간이었다. 김 이사장은 “독립운동 때문에 두 아들 곁을 오래 지키지 못하셨다. 백범일지도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기려 유서 대신 쓰셨다”고 말했다.
큰아버지인 김인 선생이 충칭에서 폐병을 앓을 때 마지막으로 기댈 약은 페니실린이었지만 구하기 어려웠다. 김 이사장은 “며느리인 안미생 여사가 약을 구해달라 부탁하자 할아버님께서는 '여기 와 있는 동지들 중 그 병을 앓다 죽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내 아들만 살릴 수 있겠느냐'며 거절하셨다고 한다”고 전했다. 결국 장남 김인은 광복을 몇 달 앞두고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광복 직전, 백범의 인간적 고뇌가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
김 이사장은 백범의 인간적인 모습이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이 광복 직전이었다고 봤다. 백범이 중국에서 창설한 한국광복군은 암호명 '독수리 작전'으로 불리는 한미합작특수훈련(OSS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애타게 준비했던 국내 진입 작전은 1945년 8월 10일 일제 항복으로 무산됐다.
백범일지에는 이 순간이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로 기록돼 있다. 김 이사장은 “독립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나라 미래가 걱정되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범의 선견, '아름다운 나라'의 비전
김 이사장은 조부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려움 가득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탱한 '교과서 속 독립운동가'로만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독립 이후에도 공동체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려 한 사상가로서 면모도 조명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 직후 나라의 기반조차 갖춰지지 않았던 1947년 출간된 '백범일지'와 '나의 소원'에서 이미 가장 부강한 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 즉 높은 문화의 힘으로 다른 나라에도 행복을 주는 나라를 말씀하셨다”고 김 이사장은 짚었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 문화가 세계인 일상에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선견에 새삼 놀라게 된다”며 “이제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역할과 책임,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전할지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유네스코 기념해를 맞아 해외에서도 백범의 삶과 사상을 접할 기회가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10월 김구 탄생 150주년이 되는 올해를 '유네스코 기념해'로 공식 지정했다.